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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좌담> 전통적 장르와 예술 현장 사이의 줄다리기 - 신지연/장선미/김기정




<좌담> 전통적 장르와 예술 현장 사이의 줄다리기 
: 문화예술기획자가 말하는 '예술활동증명'의 어려움 
 
 
이 대담은 '예술활동증명' 신청 절차를 받은 문화예술 기획에 발을 걸친 예술인들을 초청하여 이루어진 대담으로, 전통적인 장르로 예술을 구획했을 때 '예술활동증명'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경우를 알아보기 위하여 기획되었다. 
 
대담에 참가한 예술인 중 3명 중 2명은 문화기획자로 예술인복지재단에서 분류한 세 가지 유형 (1. 창작, 2. 실연, 3. 기술지원, 기획) 중 기획에 해당하는 이들이며, 나머지 한 명 역시 사진작가로 세 유형 중 창작에 해당하지만, 본인 자신이 말하길 문화기획에 관심이 있다고 하였다.
 
지금의 예술이란 장르 간 횡단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결과물이 없는 개념 예술도 존재하며, 때때로 예술 활동 과정 자체가 문화예술기획이라는 이름 하에 포섭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의 공연 및 전시에 목적을 두지 않고, 카페를 문화예술 활동 및 네트워크 공간으로 가꾸어 나가는 것을 곧 예술로 삼는 것이다. 
 
이번 대담은 행정이 정의하는 예술 장르와 끊임없이 변화하는 예술 현장 사이의 ‘증명하기’ 줄다리기에 관한 이야기가 주로 오고 갔다. 물론 이 대담에 참가한 예술인들이 모든 예술인의 의견을 대변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대담이 의미있는 이유는 창작, 실연과 달리 결과물이 명확하지 않아 '예술활동증명'에 어려움을 겪는 문화예술기획이 예술인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현장과의 간격을 좁혀가기 위한 노력을 하기 위함일 것이다.
 
 

  

일시ㅣ 2013. 09. 25 오후 6시, 가톨릭청년회관 ‘다리’  
 
함께 해주신 분들ㅣ
 
신지연 (문화예술기획자, 가톨릭청년회관 ‘다리’ 소속)  
장선미 (문화예술기획자, 사회적 협동종합 ‘자바르떼’ 소속) 
김기정 (사진작가, 문화예술기획자) 

인터뷰/글 : 현승인 (funkaline@gmail.com)

  

 

                                                       왼쪽부터 김기정, 신지연, 장선미 ⓒ 양리혜
 
 
 
-'예술활동증명' 승인과 반려는 종이 한 장 차이?
 
Q. 간단한 자기소개와 예술인활동증명 신청을 한 이유를 각자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신지연 : 저는 신지연이라고 합니다. 예술경영을 전공하고 문화예술과 관련된 여러 사회적 기업에서 문화기획을 했어요. 지금은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다리’에서 마찬가지로 문화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다리’라는 공간이 생길 때부터 프로그래밍과 관리를 하고 있어요. 그러다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예술활동증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여러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선 '예술활동증명'을 해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신청을 했죠. 하지만 결국 반려를 통보받게 되었습니다. 
 
Q. 반려 사유가 뭐였죠?
 
신지연: '예술활동증명' 신청을 하기 위해선 예술활동을 증빙할 수 있는 자료를 첨부해야 하잖아요. 저는 그 증빙자료로 제가 했던 행사들의 인쇄물을 냈어요. 예술활동 유형 중 기획은 최근 3년 간의 활동만을 인정한다고 해서 ‘다리’에서의 경력을 내야 했어요. 최근 3년간은 ‘다리’에서만 일했거든요. 문제는 저는 이 공간의 총괄기획자이기 때문에 인쇄물에 제 이름을 굳이 따로 넣지 않았어요. 물론 신청을 하기 전, 행사에 사용된 인쇄물에 기획자의 이름이 들어가야 증빙자료로서 효력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저는 ‘다리’와 체결된 저의 근로계약서를 추가로 제출했죠. 계약서상에도 제 업무가 프로그램 기획이라고 명시되어있거든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신청이 반려되었죠. 반려사유는 기본적으로 인쇄물에 제 이름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첨부한 계약서만을 봐서는 각 전시와 공연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없다는 점. 결정적으로 기술지원, 기획 인력보다는 행정적인 일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었죠. 
 
Q. 여기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많으실 것 같은데, 일단 다른 분들의 자기소개를 듣고 진행하는 게 어떨까 싶네요. 김기정씨도 간단한 자기소개와 '예술활동증명'을 신청하신 이유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김기정 : 저는 김기정이라고 하고요. 사진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파인아트를 하고 있어요. 지난 10년 간 단체전, 도록 제작 등 여러 일을 했었어요. 그리고 그런 활동을 하면서도 계속 문화예술경영을 공부했어요. 그래서 여러 기획에 참여하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진행하는 교육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런데 이 교육프로그램을 들으려면 '예술활동증명'을 해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별 생각 없이 '예술활동증명'을 신청했죠. 저는 총 두 번을 신청했는데, 두 번 모두 반려가 됐어요. 첫 번째 반려사유는 전시경력 부족. 3년 내 5회 이상 전시라는 예술인복지재단의 기준에 부족하다는 것이었어요. 두 번째 반려사유는 제가 활동경력으로 제출했던 대구문화재단에서 프로젝트는 국고지원사업이 아니라는 것이었어요.  
 
Q. 대구문화재단에서 진행한 프로젝트가 국고지원사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려되었다고요? 
 
김기정 :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예술인복지재단은 국고지원사업으로 대구문화재단이 직접 수행한 프로젝트만을 인정하는 것 같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는 대구문화재단의 일을 외주로 받은 업체와 계약을 맺고 일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국고지원이 아니라는 거죠. 
 
Q. 그럼 그 프로젝트의 크레딧에 이름은 올라가 있는 건가요?
 
김기정 : 네. 거기 도록, 보고서 모두 이름이 올라가 있어요. 
 
 

 


> 예술인복지재단의 교육프로그램은 초기에는 '예술활동증명' 절차를 마친 분에 한하여 제공되었지만, 현재는 '예술활동증명'을 마치지 않아도 신청, 참여할 수 있다. 다만, '예술활동증명' 절차를 마친 분은 프로그램 종료 후 교육훈련참여수당과 수료증을 받을 수 있다. 
 
> '예술활동증명' 절차에서 인정하는 ‘공개 발표된 예술활동기준’은 미술/사진/건축분야에 한해서 최근 5년 동안의 활동을, 나머지 예술분야는 3년 동안의 활동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대담자 김기정과 같이 사진 활동으로 예술증명을 받으려는 예술가는 최근 5년 동안의 활동 결과물을 '예술활동증명'의 자료로 제출할 수 있다.  
 
> 보조금(국고, 지방비, 공공기금) 지원을 받은 예술프로젝트 참여는 현재는 직접 지원/선정 사업에 한하고 있다. 간접지원까지 포함할 경우 예술프로젝트의 범위가 너무나 넓어지기 때문에 현재 예술인복지재단에서는 부득이하게 지원 범위를 직접지원사업으로 한정하고 있다. 

  

 

 
 
 
 
Q. 마찬가지로 이에 대한 이야기도 이후에 함께 나눠보도록 하죠. 그럼 오늘 대담자 중 유일하게 예술인으로 승인되신 장선미씨에 대한 자기소개 부탁할게요. (웃음) 
 
장선미 : 오늘 모인 사람 중에서 유일하게 예술인으로 인정받은 장선미라고 합니다. (웃음)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지만, 미술을 전공하진 않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언저리에 있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문화기획을 하게 되었죠. 지금은 사회적 협동조합 ‘자바르떼’에서 일하고 있어요. 문화기획자가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문화기획자로 불리기도 하고 창피하지만 제가 그렇게 말하기도 해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문화기획자는 경계인인 것 같아요. 가끔은 페이퍼 아트를 하는 것 같기도 해요, 결제아트. 그래서 그런 예술가와 행정가 사이에 있는 어느 경계에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러다 '예술활동증명' 신청의 활동범주에 기획도 있다는 것을 알고 신청을 했죠. 저 같은 경우는 국고사업을 많이 해온 편이에요. 이 쪽 계통에 있는 분들은 들으면 다 알만한 국고사업을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예술활동증명' 신청 승인이 된 것 같아요. 근데 막상 승인 문자가 딱 오니까 약간 섬뜩하더라고요. 제가 인정하는 예술인들은 반려된 경우가 꽤 많았는데, 아직 예술인인지 뭔지 잘 모르겠는 저는 승인이 되었으니까요. 국고사업으로 많이 했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일이 수월하게 처리가 되니까. 좀 허무하고 섭섭한 마음이 있었어요. 
 
Q. 문화예술기획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봤으면 좋겠네요. 오늘 대담에 참가하신 세 분 중 두 분이 문화예술기획자로 일하고 계시고, 김기정씨도 사진 뿐 아니라 문화예술기획도 하셨다고 말씀하셨으니까요. 문화예술기획자는 누구이며, 기획과 행정은 무엇을 기준으로 나눠야 할까요? 현실적으로 나누는 것이 가능할까요? 
 
신지연 : 아까 반려 사유로 제가 하는 일이 기획이 아니라 행정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잖아요. 저는 그것도 의문이었어요. 문화예술 단체에서 행정을 하는 사람은 예술인이 아닌 건가요? 문화예술계에서 일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말이죠. 사실 이 부분은 '예술활동증명' 신청하기 전부터 계속 궁금했던 거였어요. 가끔 문화예술영역 안에서는 오히려 창작자, 실연자보다 기획자가 소수자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은 항상 기획자는 서브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에요. 저는 어떤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서 예술가를 서브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요. 하지만 그에 대한 보상이 예술가보다 적다는 것이죠. 결국, 예술인으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있고요. 어떤 분은 그러시더라고요. ‘네가 기획하는 것 역시 창작활동이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할 때도 있지만, 결과적으론 단지 말 뿐이고요.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에 기획자로서 서러웠던 적이 많았어요. 
 
김기정 : 기존의 예술은 결과물 위주였죠. 미술, 연극, 영화 등은 예술 활동의 결과물이 물리적으로 드러나 있잖아요. 그래서 예술인활동증명 역시 그 결과물을 증빙 자료로 요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문화기획 같은 경우에는 그런 결과물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인쇄물에 들어간 이름이라도 증빙자료로 받아들이겠다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과거와 달리 지금은 문화기획 뿐 아니라 예술 전반적으로 결과물 위주가 아닌 활동 자체를 예술로 바라보고 있어요. 그림을 그리는 행위뿐 아니라 그림을 그리게끔 상황을 만드는 것 자체가 예술이라는 거죠. 그런데 이런 부분을 너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예를 들어 카페를 예술적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카페사장님 같은 경우에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여러 기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 활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거잖아요. 


                                                                                             ⓒ 양리혜
 

 
 
 
-'예술활동증명' 과정에서 느꼈던 불편함 
 
Q. '예술활동증명' 과정에서 ‘너희가 뭔데, 내가 예술인인지 아닌지 판단을 해.’라고 생각하시는 예술인도 꽤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각 대담자 분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장선미 : 창작자들은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아르떼에서 예술강사들에게 자격증을 주기 시작했는데, 그거랑 살짝 비슷한 느낌이 있어요. 이미 굉장히 노련한 예술강사들이 많은데 갑자기 자격증이 만들어지면서 이분들은 예술전문강사가 아니라 증명되지 못한 예술강사로 갑자기 전락해버렸거든요. 그런 거랑 비슷하다고 봐요. 그동안 잘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게 생김으로써 승인되지 못한 사람은 넌 예술인 아니구나! 라고 할 수 있는 어떤 행정적인 경계를 만들어버린 상황?
 
신지연 : 물론 세금을 가지고 운영하는 예술인복지재단 입장에서도 행정적인 면에서 굉장히 어려움을 겪으리라 생각을 해요.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그런데 신청을 하는 과정과 승인과 반려를 통보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섭섭함이 이런 노력을 한 번에 와르르 무너지게 만들어요. '예술활동증명' 반려를 통보하는 문자도 서운했죠. 너무 간결하게 왔거든요.
물론 웹페이지에는 친절하게 반려 사유를 적어주시긴 하셨지만 맨 처음에 문자를 받았을 때 느낌은 좀... 단순히 제가 예술인으로 증명을 받지 못해서 드는 느낌은 아니었어요. 그동안 차근차근 쌓아왔고 진짜 며칠 밤새고 일을 했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진 것 같은 감정적인 상처를 받았죠. 이 짧고 간결한 문자로 내가 예술인인지, 아닌지를 판가름 당하는 게 너무 허무하기도 하고요. 반려를 당한 충격도 충격이지만 이걸 통보하는 방식이 좀 더 따뜻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죠. 
 
장선미 : 전 '예술활동증명' 승인 문자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섭섭하고 허무한 느낌이 들었어요. 절차가 너무 호떡 굽기 같았거든요.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진행하는 증명절차라면 좀 더 예술인들의 감성에 맞게 준비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Q. 예술인활동증명 신청서를 작성하실 때 신청내용에 예술인임을 증빙하는 다섯 가지 항목이 있잖아요. 공개 발표된 예술 활동, 예술수입, 저작권, 보조금, 기타 이렇게 다섯 가지 항목이 있는데요, 신청서 작성하실 때 자신의 예술활동을 어느 항목에 써야 하는지 헷갈리진 않으셨나요?
 
신지연 : 일단 장르가요, 너무 예전 카테고리예요. 특히나 기획자들은 얼마나 요즘에는 복합장르도 많이 하고 지원사업에는 다원 예술이나 그런 분야가 있잖아요. 왜 그게 없을까에 대해 의문이었어요. 
 
김기정 : 저는 처음에 공개 발표된 예술활동으로 신청했다가 반려되어서 재신청할 때는 보조금지원을 받은 예술프로젝트 참여로 다시 신청했는데 또 반려되었어요. 전화로 문의하니 기타 항목으로 재신청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기타에 신청하면 심사의원들이 심사해서 진행을 하겠다고요. 근데 그거는 나름대로 기분이 나빠요. 안 그래도 포트폴리오 반려된 느낌인데 또 심사한다고 하니까요. 저의 예술성이 행정으로 평가당하는 느낌이랄까요.
 
Q. 그럼 반려되신 분들은 현재 재신청을 하셨나요?
 
신지연 : 아직 못했어요. 바쁘기도 했고, 내가 이거 왜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김기정 : 저도 세 번까지는 하기 싫더라고요. 세 번 까이고 나면 재기불능일 것 같아서요. (웃음)
 
 
 
-창작지원을 받는 예술가의 사회공헌은 당연한 것인가?
 
Q. 그 외에 예술인복지재단 사업 중 불편하거나 고쳤으면 하는 부분이 있나요? 
 
김기정 : 예술인복지재단 사업 중 창작지원금을 5개월 간 주는 창작 디딤돌이라는 사업이 있더라고요. 그 사업에서 창작지원금을 받기 위해선 사회공헌을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던데 이건 좀 아니다 싶더라고요. 
 
장선미 : 제가 예전에 경기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문화바우처 사업을 모니터하기 위해 경기도 일대를 돌아다닌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사업 중에 예술가들이 차상위계층 분들에게 예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근데 그 모습을 보면서 예술인의 서비스를 통해서 차상위 계층 분들의 삶이 윤택해진다거나 예술 서비스를 받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그런 문화 바우처라는 제도가 만들어짐으로써 예술가의 창작활동을 가로막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그 예술인 복지라는 것은 예술가가 누구를 위해서 서비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이 자기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배경들을 차곡차곡 단단히 쌓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사회공헌은 김연아 선수나 박찬호 선수 같은 성공한 사람들에게 요구해야지, 왜 자꾸 예술인들에게 그걸 강요하는지 모르겠어요. 대학 때 되게 인생 깊었던 수업이 있었는데, 칸트의 선에 대한 수업이었어요. 우리가 말하는 선은 그냥 착하다는 개념 정도인데, 옛날에 선이라는 뜻은 착하다는 뜻이 아니라 의자가 다리가 부러지지 않고 제 역할을 잘하고 있는 것, 안경이 비뚤어지지 않고 내가 잘 볼 수 있게 내 얼굴에 딱 안착 되는 것, 이게 선이라는 개념이었데요. 그런 거에 비추어보면 정말 사회공헌이라는 것은 예술가가 자기 역할을 할 수 있게 지원하고 의사가 환자를 잘 돌볼 수 있게 지원하고. 선생님은 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는 배경을 만드는 것이 사회공헌 활동이지, 예술가들이 취약계층에게 가서 그림 그려주고 이런 게 전혀 아니거든요. 그런 규정들을 조금 제대로 했으면 좋겠어요. 외국에서는 이미 문화 바우처 사업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예술인의 본질적인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것으로 방향설정을 하고 있는데, 왜 그 흐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과거 해외 선진국이 겪었던 과거를 되풀이하는지 모르겠어요.
 
 

 


> 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창작 디딤돌 사업의 목적은 창작 준비금을 지원받는 예술인이 다양한 분야의 공공적 성격의 예술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제고하는 데 있다. 지원자는 창작 준비에 부담이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율롭게 연계 방법을 선택하여 제안하되, 지원기간 중 연계 활동을 수행하여야 한다. 선택할 수 있는 연계 방법은 아래와 같다.
 
(1) 복지재단 연계 사회공헌형 예술 프로그램 참여 : 예술인복지재단이 연계하는 공공적 성격의 프로그램에 참여(강연, 워크숍, 낭독회, 멘토링 등)
(2) 현재 수행하고 있는 사회공헌적 프로젝트 지속 참여 : 공공미술,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 등 사회공헌적 성격의 예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경우, 지원기간 동안 해당 프로그램을 계속 수행할 것을 약정
(3) 아카이빙 참여 : 지원기간 동안 지역사회나 사회문제 등을 취재,기록하여 본인의 창작에 활용하는 창작 준비 활동을 계획,수행
(4) 저작물 이용 허락 : 개인 창작물을 공익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에 대하여 최소 2년간 저작물 이용 허락을 약정
(5) 지원자가 자유롭게 예술연계 사회공헌 활동을 제안 
  

 

 
 
 
                                                                                             ⓒ 양리혜
 

 
 
-친정 같은 예술인복지재단이 되었으면
 
Q. 예술인복지재단에 더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장선미 : 다른 곳은 그냥 시댁 같다면 예술인복지재단은 친정 같았으면 좋겠어요. 
 
김기정 : 그럼에도 잔소리는 싫어요~
 
장선미 : 친정에서 듣는 잔소리는 그래도 시댁에서 듣는 잔소리랑은 다르죠. 
 
신지연 : 앞에서 불만을 많이 이야기했지만 예술인복지재단에 감동한 것도 있어요. 수요자 맞춤형 사업을 보면서 감동했어요. 하나의 지원사업이잖아요. 지원사업을 많이 겪고 봤고 신청도 많이 해봤기 때문에 그런 지원사업의 허와 실을 많이 알고 있거든요. 돈을 따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수요자 맞춤형 사업을 보니 정말 예술인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게끔 해주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저희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할 필요가 없게끔 말이죠. 일단 예산항목에서 인건비가 150만 원인 것은 정말 감동이었어요. 보통 다른 데선 인건비 그렇게 안주거든요. 그 정도 쓰면 왜 이렇게 인건비를 많이 책정하느냐고 그러죠. 그런 걸 보면서 예술인복지재단은 기존의 지원 기관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죠. 비록 '예술활동증명' 신청이 반려되었지만, 아직 예술인복지재단에 대한 믿음은 가지고 있어요. 
 
장선미 :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예술인복지재단이니만큼 행정에서 분명하고 명확한 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행정이 예술가를 지치게 한다면 애초에 예술인복지재단이 만들어진 의미와 멀어진다고 생각해요. 서로 지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죠. 그래서 저는 예술인복지재단 내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행복하게 일했으면 좋겠어요. 제때 퇴근하고 주말에 놀러 가고 데이트도 하고 돈도 잘 받고 외근 수당도 받고요. 그래야 넘치는 에너지로 예술가들을 보살펴 줄 수 있을 테니까요. 
 
 
 

 

 
<예술인복지재단이 말합니다>
"이인삼각 장거리 달리기, 서로가 서로의 손을 놓지 않기를"
 
‘예술인 증명이요.’, ‘회원가입 하는 거 있잖아요.’ ‘경력증명서 발급 되는 거요.’ 수많은 문의전화 속에 '예술활동증명'은 참 다양하게 지칭된다. '예술활동증명', 이 낯선 말은 왜 한국의 예술가들 앞에 갑자기 튀어나왔을까. 예술인 산재보험을 생각해보자. 2011년 예술인 복지법이 제정되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예술가들도 중소기업사업주 형태로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예술인 산재보험 가입 이전에, 누가 예술가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예술활동증명'은 예술과 복지가 조우했을 때 생긴, 일종의 통과의례인 셈이다. 
 
예술인 복지가 하나의 사회제도로 정착된 프랑스에서는 공연분야 예술가는 기본적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이에 근거해 임금 수입이 일정 수준 이상 일 때, 시각분야 예술가는 저작자로 얻은 수입이 일정 이상 되었을 때 예술인 복지제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한국 공연계에서 계약서 작성 문화는 안착되지 않았고, 미술작가들의 저작권 시장 환경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예술시장의 환경은 해외 예술선진국과는 완전히 다르다. 한국은 한국의 예술계에 적합한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 '예술활동증명' 기준은 문예진흥법을 기초로 마련된 예술인 복지법 시행규칙으로 제정되었다. 그리고 2012년 11월18일 시행 후 지금까지 약 10개월 동안 약 6천명의 예술가들이 '예술활동증명'을 신청했다. 그 과정에서 예술인복지재단은 기초예술과 대중예술을 아우르는 10개 분야에서 활동하는 창작, 실연 예술가들과 기술지원 스태프, 기획자들을 만났고, 때때로 상처와 안타까움을 서로 주고받았다. 
 

예술은 무한하고, 예술가는 외부의 규정이 아닌 자기 자신의 정체성으로 존재한다. 이 절차는 예술가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절차일 수 없다. '예술활동증명'은 예술과 복지라는 예민한 경계 사이, 복지제도의 안과 밖을 나누는 문이다. 그 문이 행정과 법의 울타리 안에서 육중하고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법과 제도 사이에서 우리가 서로 여닫아야 할 문이다. 어쩌면 시간이 조금 더 많이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이인삼각 장거리 달리기이니까. 서로가 서로의 손을 놓지 않기를.   

 

 

 
 
 
 

■ 인터뷰이 개인의 의견은 <인터뷰레터 : 들음>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인터뷰/글 : 현승인 (funkali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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