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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스크린 바깥에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 영화사 MCMC 김방현/김영민





 

스크린 바깥에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두 제작자 김방현, 김영민을 만나다.   


지난 6월 극장가는 <은밀하게 위대하게> (이하 은위)로 뜨거웠다. 개봉 19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하여 올해 네 번째 600만 영화로 등극한 <은위>는 흥행 외에도 여러가지 이슈를 만들어 냈다. 


<은위>의 흥행 뒤에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은위>의 두 제작자 김방현, 김영민은 화려한 스크린 뒤의 그림자가 생각보다 짙다고 말한다. 영화 활동을 하면서 영화 산업이 불합리하다고 느낀 적이 많다는 두 사람은 자본논리로만 움직이는 국내 영화 시스템과 현장을 따라오지 못하는 정책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동시에 인터뷰를 통해 독과점 문제로 이슈가 된 <은위>에 대해서도 해명을 했다. 영화산업 종사자들의 노동이 제대로 인정받는 것을 목표로 영화사를 설립한 <은위>의 두 제작자를 만나 스크린 바깥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고충을 들어보았다.


인터뷰/글 : 현승인 

  

김방현 ⓒ양리혜


 

Q 감독과 비교하면 제작자는 일반 사람들에게 생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자기소개 좀 부탁할게요.

 

김방현 : <은위> 제작과 각본을 쓴 김방현입니다. 전 그냥 멍청하고 고집 센 사람 같아요. 제가 올해 서른여섯인데, 약 13년 정도 계속 영화 일만 했으니까요. 보통 개인적인 사정, 시스템의 문제 등 여러 가지 일로 중간에 많이 그만두는데, 어쨌든 간에 버텨왔습니다. 영화계에는 ‘잘하는 사람이 입봉하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사람이 입봉한다.’ 는 이야기가 불문율처럼 있거든요.

 

Q. 영화를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김방현 : 소설가가 되고 싶어서 국문과에 들어갔는데, 교양수업으로 영화학이라는 수업을 듣다 보니 제가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이라기 보단,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는 것을 알았죠. 그때 제가 생각하기에는 영화가 소설보다 훨씬 강력한 매체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영화 동아리를 만들었죠. 제가 다녔던 학교에는 영화과가 없는데다가, 영화동아리도 활성화도 되어있지 않았었으니까요. 장비도 없고 카메라도 없었어요. 그래서 단편 영화를 처음 찍을 때, 카메라를 어떻게 쓰는지도 몰라서 인터넷으로 보고 아 빨간 버튼을 누르면 녹화구나, 이걸 돌리면 포커스구나, 그렇게 하나하나 배우면서 찍었어요. 선배들이 없으니까요. (웃음)

 

Q. 그 이후로 계속 독립영화를 찍으셨던 건가요?

 

김방현 : 사실 독립영화를 찍었다기보다는 단편영화를 찍었다고 생각해요. 독립영화는 상업자본의 투자를 받지 않고, 혹은 받는 것을 거부하는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제가 딱히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하지만 단편영화를 주류 투자사에서 투자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독립영화 카테고리에 들어가긴 했지만 특별히 인디정신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Q. 최근 몇 년 동안 우수한 장편 독립영화들이 꽤 많이 나왔는데요. 보통 영화 아카데미의 졸업 작품인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카데미에 들어갈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는지요.

 

김방현 : 저는 기본적으로 아카데미가 하는 방식에 회의를 느껴요. 영화 아카데미의 장편 지원금이 정확하지는 않은데 한 5,000만 원 정도 될 거예요. 그 돈으로 제대로 된 인건비를 주고 영화를 찍는다는 건 말이 안 되거든요. 최소한 먹고 자고 이동하는 비용으로도 부족한 돈이죠, 단편영화가 보통 30분 내외의 길이인데, 평균 촬영 회 차로 치면 7, 8회 차를 찍습니다.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는 7, 8회 차를 도와줄 수는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장편영화를 하면 적어도 30회 차를 기본적으로 찍어야 하는데, 날짜로 치면 한 달 이상은 걸리는 거죠.  그 기간을 과연 이 친구들에게 아주 기본적인 돈조차 주지 않고 시키는 것이 과연 온당한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아카데미에 들어가면 좋은 게 있긴 하죠. 훌륭한 교수님들과 훌륭한 기자재들과 훌륭한 장비들. 기본적으로 그런 물량이 있어야 좋은 영화가 나오는 거니까요. 그리고 훌륭한 인맥들을 만들 수 있죠.

 

Q. 그럼 그런 것들 없이 어떻게 영화를 찍으셨나요? 자금이라던가, 네트워크라던가.

 

김방현 :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반기별로 1년에 2번, 시나리오를 공모하고 그중에 심사를 거쳐서 제작비 일부를 대주는 사업을 하고 있어요. 보통 그런 지원 사업을 통해서 자금을 충당했고요.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 영화 스태프를 해서 번 돈, 등록금을 한다고 부모님에게 돈 삥땅치고. (웃음) 

  

 

MCMC 사무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로케이션 셋팅을 위한 밑작업들 ⓒ양리혜

 

 


-화려한 스크린 뒤의 그림자


Q. 단편영화를 찍다가 상업영화로 어떻게 넘어가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김방현 : 독립영화 하는 사람들이 계속 독립영화만 하는 것도 아니고, 상업영화를 주로 하는 사람들도 자기가 하고 싶으면 독립영화를 하기도 해요. 그렇게 두 개로 딱 구분할 만큼 일하는 판이 다르지 않아요. 계속 크로스가 되거든요. 영화공부를 하는 사람들의 최종목표는 대부분 상업영화감독이 되는 거예요. 단편이 굉장히 좋아서 만드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 상업영화로 가기 전의 연습 혹은 통과의례 같은 걸로 생각하죠. 일반적인 경험인지 모르겠는데, 저는 제가 찍고 싶은 단편영화를 찍으면서 진 빚을 상업영화의 스태프로 일하면서 갚고 그랬어요.

 

Q. 그러다 제작사는 어떻게 하다가 만들게 된 건가요?

 

김방현 : 저와 함께 영화를 만드는 친구들의 오랜 꿈이 노동을 제대로 인정받는 영화계를 만들고 싶다는 거였어요. 연출부 막내가 상업영화에서 단돈 70만 원을 받고 일하는 걸 봤거든요. 흔하죠. 흔한 경우에요. 그들의 노동 강도는 엄청나거든요. 연출부는 촬영이 있을 때만 일하는 게 아니라서 출퇴근이란 개념이 없어요. 집에 들어가도 일이 생기면 바로 나와야 하죠. 너무 과하다고 생각을 해요. 고질적인 문제죠. 제작사에서 돈을 많이 주고 싶다고 해도 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메인 투자사에서 인건비를 정해주거든요. 예를 들면 연출부 막내 인건비는 얼마를 줘야 한다, 이렇게 정해져 있어요. 다 그런 것은 아닌데, 보통 그런 식으로 많이 하죠. 그래서 차라리 우리가 제작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작사가 갖는 몫을 포기하더라도 제대로 돈을 주겠다는 마음을 먹고요.

 

Q. 그럼 <은위>가 mcmc제작사의 첫 작품인가요?

 

김방현 : 네. 첫 작품이죠. 웹툰을 너무 재밌게 봐서 꼭 영화로 만들고 싶었거든요. 저도 연출 전공이기 때문에 제가 연출을 할까도 생각했는데, 이 영화는 저보다 훨씬 경험 많고 훌륭한 감독님이 하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회사의 다음 작품은 제 작품을 준비하고 있고요.

 

Q. 단편영화를 찍었던 감독들은 상업영화로 왔을 때 보통 감독으로 입봉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은위>는 감독이 아닌 제작과 각본을 맡으셨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던 건지요.

 

김방현 :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감독이 각본을 써요. 각본을 가지고 감독이 직접 투자를 받거든요. 근데 저희는 좀 다른 게 이 회사를 만든 취지에 공감한 투자 파트너가 있었어요. 그 투자 파트너와 협의를 통해 <은위>를 영화로 만들기로 한 것이고요. 제가 연출과 편집을 주로 했지만, 상업영화에서 작가로도 활동했었기 때문에 일단 원작을 영화 시나리오로 만들었어요. 연출은 저보다 다른 감독님이 맡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아 그 후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기획영화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기획영화라는 것은 현재 트렌드를 분석하고 상업적으로 유효한 기획 아이템을 만든 다음에 어울리는 감독님을 섭외하는 방식의 영화인데요, 저희는 어떻게 보면 그쪽에 가깝게 시작한 거죠.  

 

Q. 영화를 찍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고 또 여러 파트가 한꺼번에 일을 하기도 하는데요, 그 중 어떤 시기, 어떤 파트가 가장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고 생각하시나요.

 

김방현 : 제가 연출을 하다 보니 편파적일 수 있는데요. 연출부가 가장 힘든 것 같아요. 한 영화가 만들어질 때까지 단계를 나누면 프리 프로덕션의 단계가 있고 포스트 프로덕션의 단계가 있어요. 촬영, 조명과 같은 기술 파트 스태프는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참여하고 편집 CG, 현상 녹음과 같은 파트 스태프들은 포스트 프로덕션에 참여해요. 하지만 연출 제작파트는 프리부터 포스트까지 다 하죠. 그래서 다른 스태프들에 비해 한 영화에 투자하는 시간이 길어요. 일은 많지만 서면상의 경력은 다른 스태프들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죠. 더구나 프리 프로덕션 단계 때는 돈을 못 받고 일을 할 때가 허다해요. 프리 프로덕션 단계는 투자를 받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라서 제작사에 돈이 없기 때문이죠. 나중에 주겠다고 약속만 한다든가, 그런 말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죠.

 

Q. 제작이 엎어지는 일도 있지 않나요? 그럴 경우는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 결합했던 경력조차 인정받지 못할 것 같은데요.

 

김방현 : 많죠. 돈도 받지 못하는데 경력조차 인정을 받지 못하는 거죠. 구조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다행히도 저희는 영화를 제작할 때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을 인정한 투자 파트너를 만난 거죠. 

 


김영민 PD ⓒ양리혜

 

 

 

-현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정책들


Q.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서 시나리오표준계약서와 씨네이알피(Cine-ERP) 시스템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진위의 사업이 실제로 영화산업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일반적으로 공감을 얻고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김영민 : 이건 제가 대답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아직까진 현장에서 씨네이알피 시스템이 익숙하지는 않죠. 물론 지금도 반영하는 현장들이 있긴 있어요. 본래는 권고사항이지만 강력하게 반영하는 펀드들도 있기 때문이죠. 시나리오표준계약서 역시 마찬가지로 권고사항이지만 이것을 토대로 계약을 하려고 하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은위>는 제작사 내부에서 만든 계약서로 계약했지만, 다음 프로젝트의 작가 계약은 표준계약서에 맞춰서 계약을 마친 상태입니다.

 

Q. 김영민 PD님도 간략하게 자기소개 좀 해주세요. (웃음)

 

김영민 : 아, <은위> 프로듀서를 맡은 김영민이라고 합니다. 2001년도에 김방현 감독님이랑 단편영화를 만들었고요. 여러 영화사의 제작부에서 일하다가 2010년도에 프로듀서로 입봉을 했습니다. 지금은 김방현 감독과 재결합하여 함께 제작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Q. 씨네이알피시스템이 익숙하지 않다고 하셨는데 어떤 문제가 있는 건가요?

 

김영민 : 조감독들이 쓰면 좋긴 한데, 익숙하지 않은 거죠. 보통 한글이나 워드 프로그램으로 작업을 하는데, 씨네이알피를 쓰려면 들어가서 다시 거기에 맞게 써야 되거든요. 예산, 정산 관련해서는 투자를 많이 하는 롯데나 쇼박스, CJ 등에서 운영하는 시스템이랑 잘 맞지 않더라고요. 결국, 일을 두 번 해야 되는 경우가 생기는 거죠.

 

Q. 이번 시나리오 표준계약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단계별 계약 방식입니다. 시나리오 집필을 트리트먼트, 시나리오 초고, 시나리오 2고, 시나리오 3고로 단계별로 세분화하고 각 단계에서 집필료를 선지불하는 방식을 적용한 것인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방현 : 사실 그동안 별 관심이 없었어요. 아직까지도 애매한 부분이 있어요. 시나리오 초고에 대한 피드백을 반영해서 다시 쓴 원고가 시나리오 2고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초고를 좀 다듬은 수준인 것인지 애매하잖아요. 작가 입장과 제작사의 입장이 다를 수 있죠. 그리고 저는 계약한 돈이나 제대로 받을 수 있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Q. 그 말은 많이들 못 받는다는 말씀이시죠?

 

김방현 : 못 받은 경우가 많죠. 제가 3년을 일해서 못 받은 돈이 받은 돈의 3배 정도 돼요. 이걸 따지기도 어려운 게, 돈을 못 받은 것에 대한 항의를 했을 경우에 불이익을 당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어요. 영화판이 생각보다 좁잖아요. 한 다리 건너면 다 안다는 말이죠.

 

Q. 몇 해 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하는 영화사들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발표했었는데요. 실제로 그렇게 시행이 되고 있나요?

 

김영민: 저는 임금체불을 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웃음) 영진위 지원금 혹은 영진위에서 관여하는 펀드들은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하는 영화사에 지원과 투자를 제한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신문고를 통해서 고소를 당하거나 부정적인 이슈가 있는 제작사는 그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진 지원과 투자를 못 받는 거죠.

 

Q. 영화노조도 있는데, 영화계에서 영화노조는 어느 정도 공감을 형성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영민 : 2007년도에 한국영화산업노조에서 4대 보험과 시급제를 적용한 표준계약서안을 제시해서 한때 시행이 됐던 적이 있는데요, 오히려 흔히 말하는 턴키계약보다 더 돈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스태프들 사이에서 나왔어요. 일종의 과도기라고 생각해요.

 

김방현 : 저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영화계는 굉장히 가족적이에요. 예를 들면 연출부는 조감독이 스태프 선정 권한이 있어요. 그럼 보통 지인들이거든요. 후배나 전부터 같이 작업하던 사람으로 구성되죠. 그래서 그 라인들끼리 끈끈함이 있어요. 그리고 영화 하는 사람들이 계약서 안에서 문구 하나가 어느 정도의 큰 의미가 있는지 몰라요.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스틸컷 중

 


-<은밀하게 위대하게>에 대한 오해


Q. 영화계에서 스크린 독과점 이슈는 몇 해 전부터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데요,  <은위> 역시 너무 많은 스크린을 점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방현 : 일종의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처럼 보통의 제작사, 그것도 신생 제작사가 배급이나 극장 스크린 수를 관여할 수 있는 여지는 제로에요. 특히 <은위>는 메인투자자가 대형 투자사가 아니었어요. 우리 제작사의 취지에 공감한 투자사가 <은위> 기획 단계부터 참여했던 거구요. 나중에 '쇼박스'가 배급사로 결정되었죠. 더욱이 '쇼박스'가 자체 극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맘대로 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제가 알기에는 'CJ'에서 만든 영화도 'CGV'를 관여할 수 없어요. 극장은 극장만의 수입을 생각하기 때문에 관객이 많이 드는 영화를 스크린에 거는 거죠. 저희 영화는 특히 더 그랬죠. 막상 깔 때까지도 메이져 배급사들이 얼마나 흥행할지 제대로 예측을 못 했어요. 예매율이 올라가니까 스크린 수가 점점 늘어난 거죠. 독과점 논란이 나왔을 때 저희 제작사가 굉장히 잘못한 것처럼 다뤄졌는데, 저희가 억울한 면이 있죠. 1,300개 정도의 스크린을 점유하면 점유율이 30% 정도 되는데, 많은 점유율이죠. 근데 제가 만든 영화지만,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만큼 제가 정의로운 인간은 아닌 것 같아요. 돈을 벌고를 떠나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최대목표는 많은 관객이 보는 거거든요. 모 감독님께서 굉장히 파렴치한 제작사라고 표현을 하셨더라고요. (웃음)

 

Q. 현재 싸이더스, CJ와 같이 대기업 자본으로 운영되는 제작/배급사들이 기획영화를 주로 만들면서 시장에 너무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데요, <은위> 역시 많은 사람에게 그렇게 읽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방현 : <은위>가 독과점 논쟁이 나올 정도로 많은 스크린을 점유했는데요, <은위>는 그것을 논의하기 위한 중요한 사례가 될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순전히 대기업자본으로만 만들어진 영화는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은위>는 그런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는 거죠. 여중ㆍ고생이 좋아할 만한 100% 성공할 배우인 ‘김수현’을 중심으로 기획해서 만든 영화라고 생각을 하시는데, '김수현'이라는 배우가 캐스팅됐을 당시에는 많은 투자사가 우려를 했어요. 2시간 남짓한 영화에 이 어린 친구를 단독주연으로 내세우는 것은 무리라고 봤던 거죠. '김수현'이라는 배우가 이렇게 폭발력이 있을지는 개봉을 하고 난 다음에 알았어요.

 

Q. 문제는 '김수현' 주변에도 여러 인물과 상황이 존재할 텐데, 영화 안에서 그런 것은 가려지고 '김수현'만 보인다는 거죠. 그래서 2시간짜리 '김수현' 화보다, 라는 말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순전히 '김수현'의 팬덤으로 흥행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하고 있는데요, 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김방현 : 그게 웹툰하고 차이인데요. 영화는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이 끌고 갈 수밖에 없어요. 이 영화는 바보 역할을 하다가 엘리트 요원이 되는 '원류한' 캐릭터 중심의 영화기 때문에 그 인물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평론가가 완성도를 가지고 비판을 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누구의 표현대로 이 영화 때문에 한국영화가 10년 퇴보했다고 말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어요, 90년대에 기획영화가 나와서 성공을 하다가 굉장한 감독들이 나왔죠. 박찬욱, 봉준호와 같은 감독들의 색깔이 강한 영화들이 작품성과 상업성 두 가지 측면에서 성공했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한국영화의 발전이었다고 이야기를 해요. 자연스럽게 어떤 배우가 나온다고 무조건 팔리는 티케팅 파워라는 게 약해졌다고 생각했었죠. 근데 <늑대소년>이나 <은위>처럼 다시 젊은 티케팅 파워를 가진 배우가 등장한 거예요. 이를 두고 한국영화가 퇴보했다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공존을 하는 거라고 봐요. 이런 영화도 있고 저런 영화도 있는 거죠.

 

 

 

-스크린 바깥에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Q. 조감독까지 하다가 감독으로 입봉을 하지 못한 채 영화계를 떠나는 분을 본적이 있습니다. 보면서 참 안타까웠는데요. 허리우드처럼 전문 조감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방현 : 입봉을 못하는 경우가 더 많죠. 시장은 작고, 일 년에 나올 수 있는 영화는 한정되어있으니까요. 만약 헐리우드처럼 전문 조감독으로 먹고 살수 있다면 전문 조감독이 없을 이유가 없죠. 회사에 오래 다니면 월급이 올라가듯이 전문 조감독을 오래하면 월급이 오른다면.

 

Q. 문제는 입봉을 하는 것이 개인의 능력과 운에 너무 많이 좌지우지 된다는 것 같아요.

 

김방현 : 공무원 시험 같은 경우에는 정확한 평가기준이 있으니, 그 기준을 토대로 공부하고 평가를 하잖아요. 그게 공무원을 뽑는데 최적의 평가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어쨌든 영화는 그마저도 할 수 없죠. 감독의 연출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있다던가, 혹은 연출자격증이 있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니까요. 결국, 자기 자신을 믿고 버틸 수밖에 없죠.

 

Q. 하지만 그 버티는 것을 오롯이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나요. 예술에서 돈을 벌 수 있는 확률은 그리 높지 않잖아요. 영화를 자신의 직업으로 선택했을 때는 그것을 통해서 먹고 살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거죠. 예술인복지재단은 이런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만들어진 거고요. 영화인들을 위해 어떠한 복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김방현 : 영화인들은 기본적으로 계약직이기 때문에 계약이 끝나고 다음 작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쉬는 기간이 있어요. 그게 2년이 될지 3년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죠. 그러다가 영화를 그만둘 수도 있고요. 저는 적어도 그것을 메꿔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예전에 흥행한 영화의 모 피디님을 대리운전사로 만난 적이 있어요. 낮에는 열심히 영화 준비하시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시더라고요. 그건 너무 가혹한 것 같아요. 예술인을 특별 대우해달라는 게 아니에요. 예술인들이 특수한 상황에 있다는 거죠. 

 

Q. 10년 정도 영화를 하면서 힘들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이 있나요.

 

김영민 : 예전에 모 투자사에서 예산이 오버 된 부분을 제작사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이냐고 묻길래, 투자사가 예비비로 인정해주지 않으면 난감하다고 말했더니 대뜸 스태프들 인건비 안주는 방법밖에 없는 거 아니에요? 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그만두고 싶었어요. 술 먹고 친구한테 전화해서 내가 이런 더러운 판에서 일하고 있다 하소연했어요.

 

Q.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편인가요?

 

김영민 : 전에 진행했던 영화에서 10억 이상의 예산이 오버 되면서 투자사 쪽에서 제작사에 책임을 묻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 회사와 고소 건으로 분쟁을 푸는 기간만 1년이 걸렸어요. 당연히 그 동안 스태프들에게는 돈을 못 줬지요. 다행히 스태프들이 너무도 감사하게 기다려주셔서 이후에 지급을 했었던 기억이 있는데요, 누가 봐도 50억이 들어가는 영화인데 투자사에서는 40억으로 만들라고 하면 제작사 입장에서는 40억에 만들어야 하거든요. 영화를 엎을 수는 없기 때문에 일단 만든단 말이에요. 아무리 노력을 해도 당연하게 예산이 오버가 되요. 그러면 오버 된 예산을 제작사가 떠안게 되면서 제작사가 가져가야 하는 지분을 뺏겨요. 그런 구조들이 있는데, 표준 계약서 문제는 사실 투자사와 제작사 사이에 1차적으로 풀려야 가능한 거겠죠.

 

Q.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김방현 : 영화 쪽에 흔히 진보적이거나 좌파성향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인데, 영화판 자체는 싸구려 논리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물론 영화라는 게 투자 리스크가 매우 크기 때문이겠지만, 그 안에서 만드는 사람들이 존재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 안에서 받쳐줄 수 있는 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김영민 :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정말 고생해서 찍은 영화인데 저희의 의도와는 다르게 언론에서 다뤄지는 것을 보며 가슴이 아팠었는데요, 저희가 그렇게 대단한 수완가는 아니거든요.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작업을 했어요. 영화에 대해서 비평을 하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무조건 비난하는 문화는 영화뿐 아니라 문화계에 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는 파렴치범이 아닙니다. (웃음)

 

 

 


/ 인터뷰이 소개


김방현

<우유팩 살인사건>, <아큐정전2002>, <보민이> 등 여러 단편영화를 제작/연출하여 국내 영화제 뿐 아니라 여러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김영민 등과 함께 ‘영화사 MCMC’를 설립하고 영화사의 첫 영화인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제작/각본을 맡았다.

 

김영민

김방현과 함께 대학시절 단편영화를 제작/연출하다 <반가운 살인자>를 통해 프로듀서로 입봉했다. 기타 여러 영화들의 프로듀서로 활동하다, 김방현과 재결합하여 ‘영화사 MCMC’를 설립한 후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PD를 맡았다.

 

 


■ 인터뷰이 개인의 의견은 <인터뷰레터 : 들음>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인터뷰/글 : 현승인 (funkali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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