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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뮤지컬 프로듀서가 말하는 표준계약서 - 뮤지컬 프로듀서 이지호




뮤지컬 프로듀서가 말하는 표준계약서

 

 지난 7월 23일, 한국 드라마의 큰 별 김종학 PD가 안타깝게 스스로의 삶을 놓았다. 최고은 작가 사망 이후 예술인의 생활고가 조명되었던 것처럼, 이 사건은 배우, 작가 등 예술인 개개인 뿐 아니라 제작사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스타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프로듀서에게 무한대의 책임이 부여되는 제작 관행 속에서 표준계약서는 예술인 개개인을 보호하는 것 뿐 아니라 합리적인 제작 시스템의 기틀을 닦기 위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프로듀서는 고용된 예술인들과 달리 경영자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갑’의 책임을 다하라는 사회적 요구에 고충을 충분히 이해받지 못하는 처지이기도 하다. 뮤지컬 <빨래>의 프로듀서였던 이지호는 뮤지컬 한 편을 올리기 위해 프로듀서 역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계약서를 단지 돈을 받기 위한 보증서로 이해하기보다, 프로듀서와 배우, 프로듀서와 스태프 사이에 신뢰를 구축하는 과정으로 이해하자는 그의 주장은 충분히 귀 기울여야 할 이유가 있다. 

 

인터뷰/ : 현승인(funkaline@gmail.com) 


 

 

-뮤지컬 표준계약서 프로젝트팀이 탄생하다

 

Q. 현재 뮤지컬 협회에서 표준계약서 프로젝트팀을 이끌고 계신데요. 이 팀은 어떤 계기로 출발하게 되었는지요?  

 

이지호 : 개인적으로는 표준계약서 프로젝트 팀을 맡은 것이 운명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뮤지컬 일을 시작하면서 피고용자로서 당했던 안 좋은 일, 고용인으로 고민하고 괴로워했던 일들이 총합적으로 다가왔어요. 1년 동안 일하면서 옛 일이 떠올라 혼자 울거나 회한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선경험자로서 지금 시작하는 피고용인들 뿐 아니라 고용인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표준계약서를 뮤지컬 협회에서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2011년 9월쯤이에요. 예술인복지법이 발의가 되고 시행령, 시행규칙을 검토하기 시작했을 때이고 시행규칙에 표준계약서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표준계약서의 보급 배경이 예술인 복지법의 시행인 셈이죠. 그러나 법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고, 뮤지컬 업계를 이끌고 있는 리더들이 사명감이 있거든요. 우리가 먼저 잘해야 다른 공연예술계가 잘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죠. 

 

Q. 표준계약서 프로젝트팀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요?  

 

이지호 : 저작권은 매우 중요한 이슈여서 전담하는 분이 한 분 계시고요. 각 현장 인터뷰를 하는 팀원이 두 명, 팀장인 저까지 해서 상시 돌아가는 인원은 네 명입니다. 

 

Q. 뮤지컬은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포함되는 복합예술인데 서로 다른 예술 장르들이 만나서 논의가 원활하게 진행되는지요?

 

이지호 : 일단은 각 분과별로 모여서 논의를 했어요. 배우, 무대예술, 학술, 창작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했죠. 그런데 이렇게 각 분과별로 모이면 정말 제한적인 사고를 하게 돼요. 그래서 각각 논의된 내용을 제작분과로 수렴해요. 제작분과는 프로듀서를 포함해 고용을 책임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서 제작분과 중심으로 했고요. 프로듀서들이 바빠서 업무가 지연되니까 별도의 프로젝트팀을 꾸리게 되었고, 제가 2012년 7월 즈음 회의를 통해 팀을 맡게 된 것이죠. 표준계약서 연구를 진행하면서도 필요할 때마다 각 분과위원장들을 제가 만났어요.

 

Q. 뮤지컬협회의 분과가 어떻게 구분되어 있나요?

 

이지호 : 뮤지컬 협회는 창작, 제작, 무대예술, 배우, 학술, 극장 이렇게 여섯 분과로 나뉘어 있어요. 창작분과에는 작가, 작곡자, 연출자, 안무가가 포함되고요. 스텝들은 무대예술에 속해 있는데 디자인 스텝은 창작분과로 옮기자는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제작분과에는 저 같은 프로듀서, 대표들이 있고요. 학술분과에는 평론가, 교수님들이, 극장분과에는 각 극장 대표나 책임운영자들이 소속되어 있습니다.

 

 

 

-계약은 ‘지급보증’이 아니라 ‘이행보증’이다

 

Q. 다른 예술 산업을 보니 계약을 구두계약으로 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뮤지컬계는 어떤가요? 

 

이지호 : 다른 공연예술계와 달리 뮤지컬계는 산업적 성장이 빠르고 급격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서면계약 문화 역시 빠르게 확산되어 왔어요. 예술인복지법에서 표준계약서 관련 시행령은 서면계약문화의 확산에 중점을 둔 권고 사항이라고 이해하고 있는데요. 뮤지컬계는 서면계약이 거의 정착되어 있으니 실질적인 계약 내용이나 계약 관계가 공정하고 합리적인 문화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죠. 그런데 사실, 본질적으로 파고들면 구두계약과 서면계약을 분리하는 건 별로 중요하지가 않아요. 똑같은 계약인데 커뮤니케이션이 잊힐까봐 서로 서면계약을 체결하는 것일 뿐 구두계약도 동일한 계약이에요. 


 중요한 점은 계약을 ‘지급보증’이 아닌 ‘이행보증’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급보증’이라고 자꾸 강조하면 과정과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만 초점이 맞춰져요. ‘이행보증’은 서로 간의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죠. 나한테 권리가 생기면 의무도 생기고, 상대방도 마찬가지고. 서로 말한 바를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약속이 계약인 것이죠. 계약서를 나의 권리를 보호하는 차원에서만 생각하면 안 돼요. 

 

Q. 제작사와 배우간의 계약, 그러니까 이행보증이라고 하면 배우는 계약대로 공연을 준비하고 연기를 하는 것일테고 제작사는 거기에 맞는 대가를 지불하는 거겠죠? 

 

이지호 : 간단하게는 그렇죠. 저 같은 경우 금전적 손해에 대해 책임질 필요 없는 계약을 했는데도 더 많은 금전적 지급을 했던 경험이 있어요. 2009년인데요. 하반기에 신종 플루가 돌았어요. 보건복지부가 사람들보고 모이지 말래요.  계약서에는 천재지변일 경우, 사람들에게 비용을 지급할 의무는 없었지만 <빨래>는 앞으로도 상연할 거니까 배우들, 스태프들을 챙겼어야 했어요. 신뢰의 문제이니까요. 뮤지컬 프로덕션이 어떻게 돌아 가냐 하면요. 로컬 공연장 하나를 운영하고 거기에 약 30명 정도의 인원이 움직여요. 만약 투어를 다니게 되면 또 한 30명이 움직인단 말예요. 그럼 동시에 움직여지는 연인원 60명을 책임져야 해요. 이 사람들 연습한 것, 지금까지 들어간 사전제작비용 ...... 손해가 막대했죠. 이런 상황에서 계약서를 단지 ‘지급보증’, 그러니까 계약서가 곧 돈이라고 이해한다면 굉장히 슬픈 일이죠. 모두 함께 힘든데 ‘이 계약서에 없으니까 돈 지급할 필요 없지’ 혹은 ‘이 계약서 있으니까 돈 받아야지’ 하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Q. 예측 불가능한 사건으로 불가항력의 피해를 입었을 때 제작사는 큰 피해를 입겠죠. 하지만 뮤지컬 제작사도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고, 배우의 임무는 뮤지컬 운영이 아니라 연기를 하는 것이잖아요? 배우들이 제작사 경영에 대해 책임을 분담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이지호 : 기본적으로는 제작사가 책임을 져야죠. 그렇지만 대개 계약이 공연이 이루어졌을 때를 전제해서 비용이 책정되어 있을 거예요. 이럴 경우, 제작사가 사정이 여차저차해서 우리가 보상을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다고 제시해야겠지요. 이건 전세계 어딜 가도 똑같아요. 

공연이 이행되지 않은 경우, 계약서에 명시된 금액을 전액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례가 이미 나와 있고요. 악의적인 경우, 책임질 의지와 능력이 애초에 없었던 경우가 아니라면 일부 지급이 합리적인 것 같아요. 천재지변이 사실 프로덕션의 잘못은 아니니까요.

 

Q. 보통 신종 플루와 같은 천재지변에 대비해 보험을 들지 않나요?

 

이지호 : 큰 뮤지컬 프로덕션은 다들 보험 들어 있어요. 저도 그 때 이행보증보험, 증권을 다 끊었어요. 하지만 소용이 없었지요. 국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고요. 보험은 비용과 직결된 문제라서 프로덕션 입장에서는 부담이 높고 민감한 문제이기는 해요. 예를 들면, 화재가 발생해요. 화재는 관리 소홀로 경영자의 책임이에요. 그래서 화재보험을 들면 비용이 나가요. 비용이 늘어나서 경영을 못하면 이건 또 경영 능력 부족이 되어요. 이런 식으로 경영의 책임이 무한대로 늘어나요. 내 책임이라고 인정하기 힘든 영역까지 프로덕션 경영자에게 책임지게 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에요. 공연장을 생각해보면, 관객들이 계단에서 넘어져 다쳤을 때도 보상을 해줘야 해요. 공연장 보험 들고, 스태프들, 배우들 보험 들고, 화재보험 들고 그러면 한 달 보험료가 두 사람 인건비를 넘어가요. 보험 때문에 적자가 나서 프로덕션이 망하면 결국 프로듀서가 책임을 져야하는데요. 그 책임의 크기가 막대하죠. 그러니까, 일선에서 직접 책임지고 있지 않은 공공영역의 누군가가 ‘야, 니네 보험 들어라’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뮤지컬 시장의 거품을 부추기는 정부 지원은 바람직하지 않다

 

Q. 어느 정도 국가에서 보완적 대책을 마련해 줘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지호 : 국가에서 공적자금을 마련하면 좋긴 하죠. 하지만 이건 결국 비즈니스의 영역, 민사의 영역이라서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싶어요. 

공공 영역에서 예산 집행할 때 예술계의 문제를 과연 얼마만큼의 우선해야 할까요? 예술의 공익적 가치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수재민 문제나 중소기업 문제보다 우선할까요? 중소기업이 망하면 중소기업부터 도와야한다는 것이 제 생각예요. 그 사람들이 살아갈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 공연을 보러 올 것이고요.

 

Q. 예술가들이 스스로 이익주체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상황이 문제라는 의견도 존재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지호 : 저는 약간 생각이 다른데,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단체는 지금도 충분히 많다고 생각해요. 국가가 왜 지원해 주지 않냐고 권리 주장을 하는데요. 사람들은 공적 지원을 해야할 만큼 예술 단체들이 공익적이고 예술적인 가치를 충분히 생산해내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대학로하면 연극을 떠올릴 가능성이 많아요. 그런데 연극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검색창에 한 번 쳐보세요. 배고픔, 가난, 열악함 ... 연극인, 대학로하면 부정적인 뉘앙스뿐이에요. 이것이 사회가 연극을 바라보는 시선이죠. 


 뮤지컬은 산업적 성장이 이루어져서 좀 다를 수도 있지만 몇몇 선도적인 컴퍼니를 제외하면 대부분 고만고만해요. 제가 뮤지컬 산업현황 DB조사를 지금 하고 있는데, 7월 한 달 올라간 뮤지컬 작품이 182개예요. 224개 장소, 543개 유관단체와 관계되어 있어요. 한국 시장 크기에 비해 너무 많죠. 이 중 관객들도 예술적 가치를 인정할 수 있을 만한 작품이 얼마나 될까요. 노래방이 유행하면 노래방이, 카페가 유행하면 카페 천지가 되는 것처럼, 뮤지컬이 유행하니까 다 뮤지컬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진입장벽을 높여서 그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예술 단체들도 국가 지원만 바랄 것이 아니라, 작업의 결과물에 대해 더 관심을 써주었으면 좋겠어요.

 

Q. 이건 지금 락페스티발의 유행이나 출판업계의 문제와도 비슷한 것 같아요. 출판에서도 힐링, 처세술 책이 유행하니까 그런 방면으로만 서적이 출간되잖아요. 뮤지컬 붐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중에 거품이 꺼지면 많은 문제가 드러날 텐데요.

 

이지호 : 우리 민족이 음주가무도 좋아하고, 판소리나 마당놀이를 뮤지컬의 원형적 형태로 볼 수도 있고요. 오래 전부터 한국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요소들을 뮤지컬이 많이 포함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특성을 잘 포착해서 선구적으로 시장을 만든 선배들이 있었고, 저도 그 선배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감사하죠. 하지만 생각하시는 것만큼 핑크빛은 아니에요. 제작 현실에 좌절하고 책임을 어떻게 할 수 없어서 목숨을 끊은 제작사 대표들도 많이 있어요. 아마 제작사 대표만이 아닐 거예요. 저희들이 모르는 사례가 많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가까운 시일 내에 굉장히 많은 제작사들의 도산과 파괴, 정화가 일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표준계약서의 핵심에는 장르와 분과를 넘어선 공통 이슈가 있다

 

Q. 그런 고민이 뮤지컬 표준계약서를 만드는 것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나요?

 

이지호 : 연결이 되면 좋은데, 표준계약서는 복지법 시행규칙에 준해서 진행이 되고 있기 때문에 아직 그 부분은 미비하죠. 현재 표준계약서 프로젝트팀에서는 사내 보험 적용 시 제작사의 비용 부담이 프로덕션의 규모에 따라 얼마나 다를지 연구해보자는 논의가 있어요.

 

Q. 말씀 듣다보니, 현장에서 피고용자와 고용자 사이에 합의를 이루는데 표준계약서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궁금해지네요.

 

이지호 : 제가 프로젝트팀을 운영하며 수많은 사례를 듣고 또 분석해 본 결과, 처해진 각각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표준계약서만으로 현장에서 계약이 잘 될 수 있다 또는 없다는 식으로 간단하게 판단할 수는 없어요. 다만 그 처해진 상황이 예술 장르별 고유의 특징에 좌우되기보다 장르를 떠나 공통적으로 세 가지 정도의 이슈와 엇물려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각 작업 영역에서 창작적 표현에 관한 저작물성 인정 여부.

둘째, 각 작업 영역에서 결과물 기여도에 대한 판단 기준과 그에 따른 지적재산권 소유 여부.

셋째, 특수고용노동자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 인정 여부.

이 세 가지 이슈가 앞으로도 주된 논의의 쟁점이 될 것이라 봐요.

 

Q. 아, 특수고용노동자와 예술인은 어떤 관계가 있나요?

 

이지호 : 현재 근로기준법에서 말하는 근로자는 사용자에게 종속되어서 제한된 장소와 제한된 시간의 통제 조건 속에서 지휘를 받고 일하는 사람인데요. 배우가 일반적으로 일하는 형태는 특수고용노동자에 해당되어서 근로기준법 대상이 아닙니다. 배우들이 작품 할 때 프로젝트에 소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외 다른 부분에서는 조직에 종속되어 있지 않고 자유롭거든요. 이럴 경우, 소득세법 분류에서도 사업소득자, 기타소득자 이런 걸로 조세 적용을 하거든요. 비슷한 직종으로는 골프장의 캐디, 화물차 연대에 소속된 화물 운송자, 택배 기사가 있어요. 그들은 개인사업자면서 회사 소속이기도 하죠. 


 배우가 근로자가 아니란 점을 몰라서 계약할 때 오해가 발생하기도 해요. 예를 들어, 갓 데뷔한 배우가 배우 선배들에게 조언을 잘못 듣고 와서 4대 보험을 포함해 근로자를 위한 조항이 포함 안 되어 있다고 프로듀서에게 따질 수 있어요. 만일 본인이 근로자처럼 일하고 싶다면 회사에 소속되어 정해진 출퇴근 시간을 지키고, 정해진 업무 범위의 일을 하고, 통제나 지휘를 받아들여야 하고, 회사 승인 없이 다른 일을 하면 안 되거든요. 서울시 뮤지컬단에 소속된 배우들은 이런 의미에서 근로자이죠. 그러나 배우들 스스로 근로자이길 원치 않는 경우가 많아요. 

 

Q. 특수고용노동자가 사회적 안전망의 사각 지대에 있어서 사회적으로 문제인데요. 현행법 내에서 해결 방안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표준계약서가 연구가 그 이상으로 나아갈 필요는 없을까요? 

 

이지호 : 그건 위험할 수 있는 접근인 것 같아요. 물론 현행법이 불합리하다면 개선하기 위해 생각하고 노력해야겠지만, 계약서가 현행법을 넘어서면 안 됩니다. 현재 법령에 근거해서 할 수 밖에 없지요. 그런 의미에서 현재 복지재단이 보급하려고 하는 표준계약서는 타 분야에 비해 발전이 덜 된 부분을 보완하라는 정도로 이해해야 할 것 같고, 서면계약의 보급을 활성화하고 계약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찾아 도움을 주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제가 바라는 것은 문화산업의 특수성이 강하기 때문에 변호사 등을 고용해서 전담하는 기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전반적인 사회안전망 논의를 실행이 바로 필요한 표준계약서 문제와 섞어서 논쟁을 유발하면 말만 공허하게 되고 실제로 변화를 추진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있어요.

 

 

                                                                                  ⓒ Victor1558(Flickr)

 


-공연은 결합저작물이라는 판례가 있다

 

Q. 그렇다면, 주제를 좁혀서 표준계약서의 구체적인 부분들을 살펴봤으면 하는데요. 뮤지컬은 다루는 분야가 많아서 한 가지 통일된 양식의 표준계약서만으로는 어렵지 않나요? 저작권 관리도 복잡할 것 같고, 협회 분과의 의견을 모으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이지호 : 협회 내부에서도 첨예한 논의가 있어요. 저희 연구결과물 중에 연출가와 안무가의 창작적 표현에 관한 저작물 인정 여부에 관한 것이 있었어요. 국내에서는 연출가, 안무가가 실연가로 분류되어서 저작권에서 애매하게 배제되어 있는데, 외국 저작권법 실정과 차이가 있어요. 국내 저작권 관심 가진 분들은 이 부분에 대해 논의를 합니다. 협회에서는 아마 앞으로 연출가, 안무가를 창작자 쪽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작가와 작곡가가 자신의 작업을 저작물을 고정했던 것처럼 비슷하게 개발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안무가의 움직임, 연출가의 연출 루트 등이 저작물이 되는 것이죠. 현재 표준계약서 시안에는 이런 부분의 반영이 좀 부족한 것 같습니다. 


 문화산업 쪽에서 발전이 빨랐던 영화산업 선례를 보면 ‘영상저작물특례규정’이 입법되면서 감독도 엄연한 저작자로 분류되고, 모든 저작물이 최종적으로 프로듀싱 컴퍼니에 귀속이 되어요. 뮤지컬도 영화처럼 본격적인 저작권 관련 논의가 필요한 시기예요. 2005년도 <사랑은 비를 타고> 판례가 뮤지컬을 결합저작물로 판시하면서 논의의 필요성을 더욱 키웠는데요. 결합저작물은 각본, 악곡, 가사, 안무, 무대미술 등 각각의 요소가 따로따로 저작권을 지녀서 요소들을 분리해 이용 가능한 저작물의 집합체를 말하는데요. 판례에서는 결합저작물이라서 뮤지컬 제작자가 저작권법 상 영상저작물의 저작자에게 부여하는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을 수 없다고 했어요. 영상저작물에서는 영상제작자가 특별히 별도 계약을 하지 않는 한, 영상저작물 제작에 협력한 실연자들의 해당 영상물에 한해서 복제권, 배포권, 방송권, 전송권을 양도받은 것으로 추정해요.

 

Q. 그럼, 뮤지컬 제작자가 공연을 계속 상연하려면 저작권 관리가 복잡해지겠네요? 

 

이지호 : 결합저작물인 상태로 제작자가 공연을 지속하려면 개별 창작자들과 일일이 합의해서 저작권 양도를 받거나 장기간의 독점적 이용허락을 받아야 해요. 제 생각에는 뮤지컬은 공동저작물로 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공동저작물은 결합저작물과 달리 분리해서 이용할 수 없는데요. 만화책을 생각해보시면 돼요. 그림과 글을 따로 분리해서 이용할 수 없잖아요. 사실 뮤지컬 내 요소들을 각각 뜯어서 해당 요소의 저작권자가 누군지 실정법으로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서로 자기 아이디어라고 우기는 일이 일어나고요. 때문에 공동저작권 그룹을 만들어 우리의 모든 저작재산권을 귀속시키자는 움직임이 있어요. 법인은 법인격이기 때문에 저작인격권을 소유할 수 있거든요.

 

Q. 원활한 공연의 진행을 위해 저작재산권 자체를 양도하는 경우도 있나요? 

 

이지호 : 그렇게 계약이 일어나기도 하죠. 프로덕션 입장에서 편하거든요. 하지만 저작재산권 자체를 양도하는 것은 굉장히 큰일이에요. 저작재산권을 양도한다는 것은 신탁관리와 마찬가지거든요. 신탁관리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 같은 걸 생각해 보시면 되요. 신탁관리는 신중해야 하고, 신탁관리 단체들이 잘 하고 있는가를 따져봐야 해요. 보통 저는 양도하지 말고 저작권 이용계약만 하라고 말해요. 만약 이용계약만 하는 것이 제작사 입장에서 너무 한정적이라고 한다면 배타적 이용계약을 5년에서 10년으로 설정하는 거죠. 계약기간을 5년에서 10년 이렇게 해주면 제작사도 마음 편히 비즈니스를 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게 가장 이상적인 저작재산권 계약방식이라고 봐요. 아니면, 믿을만한 에이전트를 만들던가요. 뮤지컬 업계에서 에이전트가 가장 먼저 발전한 비즈니스 분야는 배우인데 저는 앞으로 여러 범위에서 에이전트가 선진화될 거라고 보고 있어요. 

 

 

 

-계약 문화의 보급을 위한 교육 방법론을 고민해야 한다

 

Q. 저작권, 계약에 대해 여러 중요한 지점을 짚어주셨는데요. 내용이 상당히 전문적이에요. 사실, 이렇게 어려운 이야기를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지호 : 전 사실 한국사회에서 살기가 너무 피곤하다는 생각을 해요. 황우석 사건 같은 걸 뒤돌아보면, 줄기세포가 국민적 이슈가 되는 나라가 한국이거든요. 아마 줄기세포에 대한 이해는 한국인이 가장 높을 거예요. 하지만 모든 국민이 줄기세포를 알 필요는 없잖아요. 마찬가지로 배우에게 중요한 것은 연기이고, 연기에만 집중해도 어려운데, 저작인접권을 알아야 하는 상황이죠. 나도 모르게 내가 사업소득세를 내야하는 창작자도 힘들 것이고요. 저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아무 것도 모르고 업계에 들어와 너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예술경영을 전공하고 석박사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했지요. 하지만 모두가 그런 공부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더 중요한 점은 어설프게 알고 대응하는 게 때때로 더 위험하다는 것이에요. 저는 이 분야가 비즈니스로 발달했으면 좋겠어요. 잘 하는 사람들이 실연가, 창작자를 도와주는 환경을 비즈니스로 조성할 수 있지 않을까요. 

 

Q. 전문가가 도와준다 해도 본인의 포지션이나 자신에게 발생하는 일에 대해 최소한은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그걸 알아야 필요한 법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고,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지도 알 수 있잖아요.

 

이지호 : 예를 들면, 저작물을 등록하지 않아도 저작권자인데 잘 몰라서 권리를 못 챙기죠. 혹은 프리랜서나 개인사업자가 제도 내에서 어떤 것인지 잘 모르고 자신의 추측대로 임의적인 판단을 해서 나중에 문제가 된다든가요. 피해 사례 모음도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요즘에는 오히려 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해요. 피해 사례를 자꾸 접하면 나에게 해당하는 경우가 아닌데 무작정 내가 받은 피해처럼 여겨지거든요. 아무래도 계약은 민사의 영역이라서 정부가 돕는 데는 한계가 있고, 지금은 전문적인 에이전트나 전담 기구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예술인 스스로 공부가 필요해요. 도움이 필요한 쪽이 꼭 피고용인만은 아니에요. 고용인도 도움이 필요해요.


 저도 스무 살 때는 계약서 없이 60만원 받으면서 하루에 18시간 씩 음향 일을 했는데요. 그 때는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게 고마웠고 배워야하는 단계라고 생각했어요. 그 뒤로 불합리한 사건들을 여러 가지 겪으면서 억울함을 느꼈지만 누구에게 도움을 구해야 할 지 몰랐거든요. 이제 시대가 변해서 웹을 통해 도움을 얻을 수 있는데요. 문제는 공식 기관 홈페이지 등을 이용하지 않고 네이버 지식인이나 떠돌아다니는 소문처럼 부정확한 정보에 의존하는 일이 자꾸 생겨요. 도움 받아야 하는 내용과 도움 줄 수 있는 내용이 정확해야 하는 건데.

훌륭한 에이전트가 하나 생기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아요.

 

Q. 다른 인터뷰에서도 한결같이 예술인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예술인들은 행정 용어를 보는 순간, 공부할 마음을 잃게 되잖아요? (웃음) 계약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지호 : 같은 단어라도 업계에서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뜻하고 정확한 행정적, 법리적인 뜻은 다를 수 있어요. 이건 교육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무작정 표준계약서를 쓰라고 권고하는 것이 아니라 왜 표준계약서를 써야 하는지, 어떻게 써야하는지, 표준계약서에서 사용되는 단어는 어떤 뜻이 있는지 차근차근 알려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교육 방법도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는데, 복지재단에서 제작비를 내서 표준계약서를 주제로 하는 공연을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이 업계 종사자들이 대부분 월요일에 쉬니까 월요일마다 상연하는 거죠. 하나의 단어를 두고 얼마나 많은 오해가 생길 수 있는지 같은 내용이면 좋겠네요. 다 불러놓고 설명회하는 방식보다는 낫지 않나요? 웹을 이용한 교육을 많이들 생각하시는데 이 업계 사람들이 웹과 친하질 않아요. 그러니까 맞춤식 교육을 고민하는 게 중요한 것 같고요. 교육 방법론을 고민해야 되는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 인터뷰이 소개

 

이지호

자기소개장애가 있다. 대학교 자퇴 전후를 통틀어 학교에서 공부한 기억이 거의 없다. 공연음향을 할 줄 알고, 프로듀싱과 경영을 해 본 적이 있다. 가끔 성공했다는 오해를 받을만큼 운이 좋은 편이다. 2012년 7월부터 한국뮤지컬협회 제작분과에서 표준계약서 TF와 몇 가지 TF를 수행해왔고, 올해 난생 처음 구직활동을 시도한 세 곳 모두 서류단계에서 떨어졌다. 최근 몇 개월간 낙하산으로 외국계 기업에서 일했고, 현재 여러 조직의 컨설팅 및 개인의 에이전트를 시작으로 연내 회사 설립을 준비중이다. 

트위터 @leejiho / 이메일 leejiho@me.com

  

 

 


■ 인터뷰이 개인의 의견은 <인터뷰레터 : 들음>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인터뷰/ : 현승인(funkaline@gmail.com) 

커버이미지 : [빨래 10차 포토콜] 비오는 날이면

사진 : Victor1558(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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