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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대담] 표준계약서, 어디까지 왔니? - 홍태화/이지호





[대담] 표준계약서, 어디까지 왔니?

  

현재 정부는 예술계에 빈번히 일어나고 불공정행위와 계약 상황을 타개하는 방안 중 하나로 예술분야 표준계약서를 개발하고 보급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예술현장에서는 예술분야 표준계약서 사용에 대한 강제성이 떨어져, 실제 활용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예술분야 표준계약서는 왜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지 않을까? 보급이 활성화되기 위해서 정부와 예술계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일찍이 타 예술 현장과 비교하면 표준계약서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진 영화계의 사례를 중심으로 예술분야 표준계약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일시 ㅣ 

2014. 10. 01. 오후 2시, 충무로 영상센터 <오!재미동>

 

함께 해주신 분들 ㅣ 

이지호 변호사 (법무법인 정률변호사,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법률고문, 표준시나리오계약서 TFT 법률자문)  
홍태화 사무국장 (現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사무국장, 現 영화인 신문고 사무국장, 現 방송대중음악기술지원신문고 사무국장)

 

 

사회/글 : 현승인(funkaline@gmail.com)

 

 


- 표준계약서, 어디까지 왔니?

 

Q. 비교적 표준계약서 논의가 일찍이 이루어졌던 영화계 사례를 중심으로 예술분야 표준계약서 도입과 보급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두 분을 모셨습니다.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이지호 : 저는 법무법인 종률의 이지호 변호사라고 합니다. 현재 영화산업 법률자문, 드라마 법률자문, 그 외에 엔터테이먼트 등 다양한 영역에서 법률 자문을 하고 있습니다. 표준계약서 관련해서는 표준시나리오계약서의 법률자문을 하고 있습니다.

 

홍태화 : 저는 영화산업노동조합의 사무국장을 맡은 홍태화라고 합니다. 현재 영화인 신문고, 방송대중음악기술지원신문고 사무국장까지 맡고 있습니다. 영화 스태프로는 1995년도부터 지금까지 계속 하고 있어요.

 

Q.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다양한 예술분야 표준계약서들을 개발하고 보급하기 위해 많은 지원을 하고 있는데요, 실제 영화계 현장에서 표준계약서는 어느 정도 활용되고 있나요?

 

홍태화 : 작년 4월, 영화산업 4개 투자 배급사들이 노사 임금 및 단체협약과 표준계약서 사용 등에 관한 제2차노사정 이행협약을 체결했어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자료를 보면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표준근로계약서로 스태프와 계약을 한 영화는 총 33건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현재 집계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10월 중순까지 계산하면 약 40건 정도 될 것 같아요. C투자배급사에서 투자하는 영화는 100% 표준근로계약서 활용을 강제하고 있고요, 현재 M극장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에서 영화 투자를 시작했는데, 거기서도 현재 표준근로계약서를 100% 쓰고 있어요. L투자배급사와 S투자배급사에서는 권장하고 있는 수준이고요. 작년 제2차 노사정 이행 협약 이후로 영화계 표준근로계약서 사용률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네요. 반면, 표준시나리오계약서를 사용해 계약한 영화는 4건 정도로 확인하고 있어요. 표준근로계약서에 비해 사용률이 떨어지는 편이죠.

 

이지호 : 메이저급 회사에서 표준계약서 도입을 하면 자연스럽게 그 밑에 있는 회사들에게도 전파가 되는 효과가 있겠군요.

 

홍태화 : 특히 C투자배급사 같은 곳은 투자하는 조건으로 표준근로계약서 사용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투자받는 곳은 반드시 표준근로계약서로 계약을 해야 하는 거죠. 그뿐 아니라 임금체납 등의 문제로 영화인 신문고에 접수된 사건으로 분쟁 중인 제작사에도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요.

 

이지호 : 굉장히 반가운 일이네요.

 

홍태화 : 많이 발전한 거죠.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지원 사업, 서울영상위원회 등 여러 곳에서 영화인 신문고에 접수된 사건들을 확인하고 있어요. 영화인 신문고에 접수되어 분쟁 중인 업체와 관련된 자들은 지원 신청을 제한한다는 거죠. 영화인 신문고를 11년 동안 하면서 여기까지 오기 정말 쉽지 않았어요.

 

Q. 말씀을 들어보니 매우 긍정적인 상황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대로만 가면 영화계에서 표준계약서 보급이 활발히 이루어질까요?

 

홍태화 : 그렇지만은 않죠. 아직 표준근로계약서를 사용하지 않은 제작사들이 많고, 표준근로계약서 외의 다른 영화계 표준계약서 사용률은 여전히 낮으니까요. 그리고 표준계약서 내 임금계산을 쉽게 하는 방법 등을 고려하여 수정해야 할 조항들도 많고요.

 

Q. 그렇다면 예술분야 표준계약서가 예술 현장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홍태화 : 일단 표준근로계약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자면, 사용의 어려움 때문이에요. 지금의 표준근로계약서에서는 임금을 시간급으로 주게 되어있어요. 근로한 시간만큼 지급하는 거죠. 문제는 영화 산업의 특성상 스태프마다 일을 시작하는 시간과 끝이 각각 다르다는 거예요. 촬영에 투입되는 시간도 각각 다르고, 촬영이 끝나고 현장을 정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각각 다르거든요.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각 스태프의 일하는 시간을 체크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거기에 추가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1일 8시간)을 넘어갔을 때 초과근무수당까지 계산해야 하니 임금을 계산하기가 너무 힘들어진 거죠.

 

그리고 이렇게 임금을 시간급으로 책정하게 되면 시간당 임금을 최저임금 이상으로 줘야겠죠. 그런데 예전에는 초과근무수당은커녕 최저임금도 주지 않고 일을 시켰거든요. 그랬던 스태프들이 표준근로계약서에 따라서 최저임금법 적용을 받는다면, 고작 백만 원 받고 일하던 스태프들이 최저임금으로만 계산해도 2백만 원 이상을 받게 되는 거예요. 물론 예전부터 최저임금 이상 받아야 했었는데 이제야 조금씩 변화가 오고 있네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문제점이 있어요. 임금이 상승한 만큼 투자받은 전체예산 중 쓸 수 있는 인건비의 비율이 높아져야 하는데, 예전과 똑같다는 거죠. 쉽게 말해, 영화스태프 인건비로 쓸 수 있는 예산 1억이 표준근로계약서 사용한 후에도 똑같이 1억이라는 거예요. 이렇게 한정된 인건비 예산에서 표준근로계약서를 사용하려면 스태프 인원을 감축하거나, 비교적 높은 임금을 받고 있던 경험이 많은 스태프들의 임금을 깎을 수밖에 없는 거죠. 그렇다 보니 스태프는 물론, 제작사도 사용하고 싶지가 않겠죠.

 

Q. 영화 투자사와의 대화를 통해 예산편성비율을 변경할 순 없는 건가요?

 

홍태화 : 기본적으로 투자사와 제작사와의 관계는 갑과 을의 관계에요. 특히 슈퍼 갑과 계약을 하는 제작사는 정말 초라하기 짝이 없어요. 예를 들면 처음에 이익 분배에 대해서 투자사와 제작사가 6대 4의 비율로 가져가기로 이야기됐었는데, 느닷없이 전화해서는 갑자기 7대 3으로 하자고 말을 바꿔도 제작사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어, 이걸 거부해? 그럼 나 너한테 투자 안 해.’라는 식으로 나오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예산편성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기는 쉽지가 않죠.

 

이지호 : 표준근로계약서는 시간급으로만 임금을 책정할 수 있게 되어있나요? 기간제 혹은 월급제로 임금을 책정할 수는 없는 건가요?

 

홍태화 : 지금 현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표준근로계약서는 2012년에 만들어진 것인데요, 여기에는 시간급으로만 되어있어요. 지금 2015년도 임금단체협상(이하 임단협)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이번에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세 사용자 단체를 묶어서 교섭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이 임단협을 통해 시간급 외에 월급제와 같은 다른 임금 책정 방법을 담아 표준근로계약서를 수정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좌로부터 이지호 변호사, 홍태화 사무국장   ⓒ별일사무소

 

 

- 표준계약서가 강제성을 가지려면

​  

이지호 : 하지만 무엇보다도 예술 현장에서 표준계약서 사용을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강제성이 없고, 굳이 쓰지 않아도 그에 대한 불이익이 크지 않기 때문이죠.

 

홍태화 : 네. 발표된 모든 표준계약서 모두 문체부에서 지원한 연구사업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만, 만들어진 표준계약서의 사용에 대해선 한 번도 장관고시를 한 적이 없어요. 만들어놨으니 알아서 쓰라는 건데, 제작사들 입장에선 안 쓰면 그만인 표준계약서를 뭣 하러 쓰겠어요.

 

Q. 지난 7월, 이지호 변호사님께서도 패널로 참여하신 ‘표준시나리오계약서 토크콘서트’에서는 표준시나리오계약서 사용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문체부 장관고시를 목표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현재 진행 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이지호 : 표준시니리오계약서 사용을 강제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표준약관으로 등록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하지만 현재로써는 쉬운 일이 아니니, 징검다리 역할로 장관고시부터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보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시나리오표준계약서 내에 있는 독소조항들을 수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Q. 장관고시와 공정위 표준약관 등록은 어떻게 다른 건가요?

 

이지호 : 장관고시는 문체부 장관이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에 따라 표준계약서를 고시해주는 거예요. 문체부 장관고시한 표준계약서 사용을 하게 되면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제7조 2항을 준수하는 것이 보장되죠. 문체부 장관이 고시한 표준계약서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엔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제7조 2항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어요. 하지만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제7조 2항을 위반해봤자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밖에 안 되는 거죠.

 

반면, 공정위 표준약관으로 등록된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면 공정거래법을 준수하는 것이 보장됩니다. 공정위 표준약관으로 등록된 표준계약서를 사용하지 않게 되면, 공정거래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어요. 공정거래법 위반하여 불공정거래행위를 하게 되면, 엄청난 제재(시정조치, 매출액이 있는 경우에는 매출액의 5% 이내의 과징금, 매출액이 없는 경우에는 5억 원 이내의 과징금, 공정위에 고발이 있으면 2년 이하의 징역, 1억 5천만 원 이내의 벌금)를 받게 됩니다. 무게감이 다르죠. 그래서 장관고시가 된 표준계약서에서보다는 공정위 표준약관등록이 된 표준계약서가 업계에서 상용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공정위 표준약관으로 등록된 표준계약서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공정거래법 위반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공정위 표준약관으로 등록된 표준계약서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공정거래법을 준수하는 계약서를 작성하려면, 많은 법률 지식과 비용 그리고 노력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업계에는 ‘공정위 표준약관으로 등록된 표준계약서’를 기본으로 약간의 수정을 하여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요. 과거, 공정위에서 대중문화예술인표준전속계약서를 표준약관으로 채택한 이후에, 현재 많은 연예기획사가 공정거래법 위반이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위 대중문화예술인표준전속계약서를 기본으로 약간의 수정을 가하여 계약하고 있습니다.

 

 

홍태화 : 지금 영진위에서도 표준투자계약서와 표준상영계약서를 공정위 표준약관으로 만들려고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어요. 영화 산업에서 불공정한 거래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시장 지배적인 사업자 즉, 슈퍼 갑들이 존재하기 때문이거든요. 이런 불공정거래를 막기 위해서 표준투자계약서와 표준상영계약서, 그리고 표준배급계약서를 계속 공정위 표준약관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계속 할 거예요.

 

이지호 : 그래서 영화인 신문고의 역할이 상당히 크다고 생각해요. 신문고에 신고된 불공정거래 중에 공정거래위원회로 끌고 갈 수 있는 사례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놓치지 않고 매번 끌고 가서 ‘이런 행위는 불공정거래행위입니다.’ 라는 심결을 계속 받아내야 해요. 그게 쌓이면 적어도 심결 내에 나온 불공정사례는 감히 위반 못 해요.

 

홍태화 : 내년부터는 영화인신문고와 (영진위가 운영 중인) 불공정행위신고센터가 통합될 예정입니다. 앞으로 영화인신문고에서 불공정거래까지 다 맡아서 하게 되는 거죠. 불공정사례로 영화인신문고에 신고 되면 신속하게 해결되는 편인데요, 신문고에 신고되어 분쟁 중인 업체 혹은 사람으로 분류되는 순간 영화발전기금, 각 영상위원회 지원금 등 지원, 투자, 배급, 상영이 모두 다 막히기 때문이에요.

 

이지호 : 그 해당 관련된 영화 모든 게 막히는 거예요?

 

홍태화 : 해당 영화 뿐 아니라 그 제작사가 다른 영화를 만들려고 해도 제한이 되는 거죠.

 

이지호 : 펀딩이 다 막히는 거군요. 굉장히 강력하네요.

 

홍태화 : 그래서 업체 간의 분쟁으로 영화인신문고에 신고된 사업자들은 빨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요. 해결이 안 된 건들도 많긴 한데, 그런 사건들은 대부분 스태프 임금체납인 경우가 많죠. 그런 경우는 대부분이 정말 돈이 없어서 임금을 못 주는 사업자들이죠.

 

Q. 두 분께서 말씀하신 대로 여러 표준계약서와 영화인 신문고에 신고된 불공정 사례들이 공정위 표준약관으로 자리 잡는다면, 웬만한 영화계 불공정거래들은 잡아낼 수 있겠군요.

 

홍태화 : 그런데 표준근로계약서는 공정위 표준약관으로 등록될 수가 없어요. 예술계뿐 아니라 근로계약에 대해선 공정위에서 표준약관을 만든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공정위는 사업자와 사업자 간에 발생하는 불공정 거래를 방지할 목적으로 만들어졌거든요. 시나리오표준계약서를 사용하는 작가 같은 경우에는 사업자를 낼 수 있으니까 공정위 표준약관으로 등록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데, 현장의 스태프들은 엄연한 근로자이거든요. 지휘·감독을 받는 근로자들이 사업자를 낼 필요는 없죠.

 

이지호 : 강제까지는 못 가더라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표준계약서를 권장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힘을 발휘할 수 있어요. 비록 강제가 아닌 권장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 표준계약서는 공정거래법의 관점에서 공정거래법에 위반되지 않도록 신경 써서 만든 표준계약서이기 때문이에요. 물론 공정거래법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수정해서 쓸 수도 있지만, 괜히 바꾸는 게 찜찜한 거죠. 실제로 몇 해 전 연예계 노예계약에 대한 논란이 커지면서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연예계 불공정 관행 실태조사를 했었어요. 그러고 나서 연예계 불공정거래행위를 막을 수 있는 표준계약서 권장을 했죠. 권장하고 나니까 실제로 불공정거래행위를 많이 하던 연예기획사들이 예전 계약서를 그대로 쓰는 것을 불편해하기 시작했어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호되게 당할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픈 거죠.

 

홍태화 : 표준계약서 권장을 통해 보급을 늘리고자 한다면, 문체부에서 지원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선 표준계약서 사용 시 우대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효과적일 것 같아요.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면 지원금을 더 받을 수 있다던가, 표준계약서 사용을 하지 않으면 아예 지원금 신청을 못 하게 만드는 거죠.

 

이지호 : 사업 신청의 전제조건으로 표준계약서 사용을 둔다면, 상당히 큰 이권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열심히 사용할 것 같습니다. 근데 사실 표준계약서라고 해도 계약서는 상황에 따라 수정해서 써야 할 필요가 있거든요. 그렇다면 어디까지 수정했을 때 표준계약서를 사용한 것으로 인정할지에 대해 기준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 기준을 명시하고 알려주는 해설집 같은 게 있어야 현장에서 혼선이 안 일어날 것 같아요.

 

홍태화 : 저는 그 기준과 관련해서 판단해줄 수 있는 위원회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특히 영화계 같은 경우엔 변수가 너무 많거든요. 똑같은 예산이라 하더라도 영화 장르가 무엇인지, 감독과 스태프들이 어떤 사람인지 따라 연출 방식이 다 다르거든요. 그러다 보니 장면마다 들어가는 비용이 다 다르고, 제작환경이 다 달라요. 각 촬영현장이 모두 특수한 상황인 거죠. 그래서 위원회 같은 걸 만들어서 판가름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 표준계약서 안의 독소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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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호 : 표준계약서의 보급을 높이기 위해 공정위 표준 약관으로 등록시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그 전에 표준계약서를 손볼 필요가 있어요. 제가 법률자문을 하는 표준시나리오계약서 안에도 아직 황당한 조항들이 남아있어요. 예를 들면 지금 표준시나리오계약서에서 시나리오 고료 지급시기가 ‘최초 투자금이 입금된 때’로 되어있는데, 이거 언제 입금될 줄 누가 알아요. 그게 1년이 될 수도, 2년이 될 수도 있는 거예요. 투자금이 입금이 안 되면 고료를 안 주겠다는 거죠. 이건 명백한 독소조항이에요. 이 부분 때문에 골탕 먹은 작가들을 많이 봤어요. 벌컥 투자를 받아서 진행하자니 흥행시킬 자신은 없고, 남 주자니 아까우니까 투자처 알아본다고 말하면서 시간만 질질 끌면서 돈을 안 주는 거죠.

 

또 수정해야 할 표준시나리오계약서의 독소조항 중 하나는 계약해지 관련된 조항이에요. 시나리오 작가의 사정으로 집필 작업이 지연되거나 약속된 마감기일이 늦어질 때, 계약의 위약으로 계약해지를 당할 수 있어요. 문제는 계약해지를 당하게 되면 그 때까지 집필한 결과물 함께 그동안 받은 보수의 두 배를 물어줘야 해요. 말이 안 되는 거죠. 그 때까지 나온 집필 결과물을 제작사가 가져간다고 하면, 그 때까지 일한 부분에 대해서는 정산을 하고, 작가의 집필 지연으로 제작사가 손해를 입은 부분은 별도로 계산해야죠. 그동안 지급했던 집필료를 돌려받고 싶다면, 지금까지 집필한 작업물의 소유권은 작가에게 줘야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해야 공평한 건데, 집필결과물인 원고도 가져가고 원고료도 두 배로 돌려받는 건 공정한 것이 아니죠.

 

홍태화 : 그동안 영화계에서 관행적으로 사용했던 계약서의 독소조항이 표준시나리오계약서에 아직 남아있는 거죠. 개인적으로 표준시나리오계약서에도 근로자임을 명시하는 조항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나리오 작가도 제작사의 지휘·감독 하에 글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근로자라는 거죠. 하지만 지금의 표준시나리오계약서에는 이런 부분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아요.

 

이지호 :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말씀드리면, 지금의 표준시나리오계약서가 많은 분의 노력으로 과거의 계약서에 비해 많은 독소조항을 해결한 것은 맞아요. 다만, 표준시나리오계약서 연구를 작가뿐 아니라, 제작사 등 여러 주체가 함께했기 때문에 아직 해결하지 못한 독소조항이 몇 개 남아있는 거죠. 과거에 비해선 굉장히 좋아졌습니다. 만드신 분들도 이 부분을 고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시고, 개정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계세요.

 

홍태화 : 표준계약서라고 하더라도 계약서는 무조건 꼼꼼히 보셔야 해요. 그냥 이름만 쓰고 계약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정말 띄어쓰기 하나 가지고도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거든요. 표준계약서라고 계약서 이름을 갖고 있더라도 회사의 입맛에 맞게 변경하여 사용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단체에서 발표한 표준의 계약서와 비교해보시고 계약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덧붙여, 표준계약서의 종류가 너무 많은 것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지금 영화분야에서 사용되는 표준시나리오계약서만 해도 총 다섯 종이거든요. 원저작물 각본에 관한 계약서부터 각색계약서까지 너무 복잡하게 나누어져 있어요. ‘내가 어떤 표준계약서를 써야 하지?’ 하고 고민하는 순간 표준계약서 보급은 실패한 거라고 생각해요. 통합할 것은 통합해서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이 필요해요. 더 큰 문제는 여기저기 다양한 단체에서 직무와 직급에 따라 표준계약서를 만들다 보니, ‘표준’이라는 이름으로 발표가 된 계약서들의 용어 통일이 전혀 안 되어있다는 거예요. 결국, 같은 뜻임에도 표준계약서마다 그 용어와 문구가 각각 다른 거죠.

 

Q. 표준계약서마다 같은 뜻을 표현하는 용어가 각각 다르다는 건가요?

 

홍태화 : 그렇죠. 연구된 어떤 표준계약서에는 굉장히 오래된 법률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아직도 역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더라고요. 근로, 노동, 역무, 용역 등 결국엔 다 같은 뜻인데, 표준계약서마다 각 다른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니 사용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혼란스럽죠. 문체부에서는 표준의 계약서를 일괄적으로 관리하고 공통된 조항과 용어 등을 통일시키는 조정 작업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영화계는 다른 예술분야에 비해 표준계약서 사용 등 예술계 불공정 관행에 관해선 상당히 앞서나가고 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여전히 표준계약서 사용은커녕 서면계약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 예술분야도 많은 상황이니까요. 영화계가 아닌 다른 예술분야의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서 조언해줄 만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홍태화 : 일단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키울 수 있도록 조직을 잘 결성해야 해요. 다른 예술분야보다 그나마 영화계는 영화노조뿐만 아니라, 작가조합, 프로듀서조합, 감독조합 등 직군별 다양한 단체의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자기 단체를 위한 개선부터 영화산업 전체의 현안 등에 대해 고루 논의하고 정부에 요구하는 작업도 병행하죠.

가장 필요한 건 왕성하게 활동하는 단체들이 많아져서 서로 의견을 논하고 중지된 의견을 외부에 표출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지호 :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단체를 조직해서 힘을 결집해야 하겠죠. 하지만 조직을 만들고 제대로 가동이 되려면 자금이 확보되어야 할 텐데, 제가 알기엔 영화산업 외의 다른 분야는 그 부분이 비교적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어요. 영화산업도 정부의 자금지원을 받아서 이 정도로 성장한 건데, 다른 예술 분야에도 자금 지원이 절실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사회/글 : 현승인(funkaline@gmail.com)

 


원문링크 : http://blog.naver.com/kawf486/220400112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