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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좌담] 예술 활동과 직업, 어떻게 하면 연결할 수 있을까? - 류성효/신상원/주성진








[들음 특집호 좌담] 예술 활동과 직업, 어떻게 하면 연결할 수 있을까?

  

예술의 가치를 돈으로 측정할 순 없겠지만, 예술가들에게도 돈은 필요하다. 생계를 위해, 작품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예술가들은 예술 활동 외의 다른 일을 동시에 병행하곤 한다. 하지만 그 두 가지 일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예술가의 예술 활동이 그들에게 경제적으로도 충분히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이 될 순 없을까? 올해 ‘예술인복지재단’에서는 이 질문을 출발점에 두고 예술가들에게 예술 활동을 기반으로 직업 진출 경로를 제공하고, 경력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예술인파견지원> 사업을 진행했다. 이번 인터뷰레터 <들음>에서는 <예술인파견지원> 사업을 중심으로 예술 활동과 직업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에 대해 자유로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일시 ㅣ 

2014. 11. 04. 오전 11시,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함께 해주신 분들 ㅣ 

류성효 (<예술인파견지원> 사업 멘토, 독립문화기획자)
신상원 (<예술인파견지원> 사업 멘토, 기업문화컨설턴트, ‘기업문화오디세이’ 시리즈 저자)
주성진 (<예술인파견지원> 사업 PM 및 멘토, 문화예술기획자) 

 

 

 사회/글 : 현승인(funkaline@gmail.com)

 



- 예술 활동의 무대를 확장시키다

 

Q. 먼저 <예술인파견지원> 사업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간단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주성진 : 보고서에 쓰일 법한 딱딱한 말로 표현하자면, 예술인과 기업/지역 간 협업을 활성화시켜 예술인에게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황에서 작업하고, 또 새로운 현장에 도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기업/지역에겐 경제적 부담 없이 새로운 예술적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죠. 쉽게 풀어서 말하면, 예술인이 하고 싶은 예술 작업을 기업/지역 내에서 할 수 있게끔 매칭을 해주는데, 예술인과 기업/지역의 공동 프로젝트에 대한 예술인의 활동비를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지원을 해주는 거죠. 

 

Q. <예술인파견지원> 사업 이전에도 예술인과 기업/지역을 연결시키는 협업사업이 많았습니다. 이 사업이 기존의 사업들과 차별되는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주성진 : 기존의 사업들은 예술인에게 직접적으로 지원을 해준다기보다, 예술 프로젝트 또는 예술인을 고용한 기관에 지원을 해주는 구조로 되어있었어요. 결과적으론 지원을 받은 기관이 예술인에게 돈을 주는 구조가 돼버리는 거죠. 그렇다보니 지원받은 기관은 예술인의 결과물에 천착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예를 들면 문화예술강좌 수강생을 30명 모아서 교육을 시키면 강사비로 시간 당 얼마 씩 책정해서 준다든지, 혹은 예술인 작업의 성과물만 가지고 돈을 준다든지 하는 거죠. 최종적인 지원 대상이 예술인인 것은 맞지만, 예술인이 사업을 이끌어가는 주체는 아니었어요.

 

류성효 : 저는 이 사업을 ‘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사업이라고 생각해요. 얼핏 보기엔 예술인들에게 지급되는 활동비가 ‘고기’인 것 같지만, 그것은 ‘고기 잡는 법’을 배우는 데 필요한 기회비용의 보상일 뿐이에요. 진정한 목적은 예술인이 예술계에 국한되지 않고 자기만의 콘텐츠를 활용해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보는 데 있죠. 실제로 많은 예술인들이 타인의 니즈를 파악해서 그 상황에 맞게 작업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그런 경험이 많지 않기도 하고요. 자신의 콘텐츠를 통해 기업이나 지역에 도움이 될 만한 아이디어가 있다고 하더라도, 예술인 개인이 직접 기업에 제안해서 그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예술인복지재단이 중개자가 되어 아이디어를 현실화 시켜주는 거죠.

 

주성진 : 사실 올해 사업에서 가장 어려움을 느꼈던 것이 바로 매칭 부분이었어요. 예술인의 기획을 중심으로 기업/지역을 모집해야 할 지 아니면, 기업/지역의 니즈를 발견해서 그에 맞는 예술인을 매칭시켜야 할 지 고민을 많이 했죠. 그러다가 ‘예술인복지재단’은 예술인을 위한 단체인 만큼 예술인에 중점을 두기로 했어요. 예술인의 기획을 중심으로 그에 맞는 파트너를 찾아주기로 한 거죠. 하지만 저희가 순진했던 건지, 한계가 많이 드러났어요. 재단의 특성상 예술인 채널은 많이 가지고 있는데, 기업/지역에 대한 채널은 별로 없었거든요. 그래서 신상원 선생님처럼 기업 쪽 발이 넓으신 분들을 멘토로 섭외하고 무리한 부탁을 드렸죠. 기업/지역들에게 우리 사업을 설명해줘서 참여를 유도해달라고요.

 

신상원 : 저는 기업을 하나의 유기체라고 생각해요. 이 유기체를 움직이는 무의식 같은 것이 바로 기업문화고요. 많은 기업 조직이 문화적으로 다양한 문제를 가지고 있어요. 조직 구성원끼리 상처를 주기도 하고, 모기업과의 소통을 힘들어하는 조직도 있고,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왜 하는지도 모른 채 좀비처럼 일만 하는 조직도 있죠. 저는 이런 조직들의 상태를 진단하고, 문제가 되는 지점을 인문학과 일종의 정신분석방법을 통해 치료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처음 <예술인파견지원> 사업의 멘토를 요청받았을 땐, ’나는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닌데 왜 나를 찾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제가 하고 있는 일에 예술을 접목시키면 훨씬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죠. ’기업문화‘라는 영역이 기업과 예술이 만날 수 있는 ’매개 지대‘가 될 수 있다는 방법론적 전제였습니다. 예술인의 입장에서 보면 기업과 예술의 단순한 콜라보가 아니라, 예술이 기업 안으로 들어가는 거죠. 기업이 예술의 무대가 되는 겁니다. ‘with the company'가 아니라 'into the company'랄까요. 이러한 방법론을 만들고 밑그림을 그려놓으면 그 안에서 뭔가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있었어요.

 

류성효 : 예술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예술인을 관찰을 하다보면, 예술인들이 여러 가지 재능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요. 그런데 그 능력들이 예술이라고 하는 그 틀 안에서만 소진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죠.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 지 잘 모르고 있다는 거죠. 자신의 능력을 예술 외에 다른 곳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제가 생각하는 예술인 복지의 목표는 예술인이 스스로 생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봐요. 기존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들은 예술인의 희생을 일정 부분 계속 강요했어요. 그리고 결과도 기관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틀어놔 버리죠. 반면, 이 사업은 예술인을 복지의 대상으로 한정짓지 않고, 사업의 주체로 설정하여 스스로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어요. 이런 맥락에서 보면 진정한 의미의 인큐베이팅 사업인 것 같아요. 예술인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법을 알려주는. 

 

 


 좌로부터 신상원, 류성효, 주성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 예술 콘텐츠가 예술계를 넘어서도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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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관건은 ‘예술인과 기업/지역을 얼마나 잘 매칭시켜줄 수 있을 것인가’ 이겠군요. 올해 사업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괜찮은 사례들이 많이 나왔나요?

 

주성진 : 예술인의 기획과 기업/지역의 니즈가 완전히 딱 맞는 경우도 있었어요. 부산의 골목 풍경을 일러스트로 옮기는 작업을 하시는 작가분이 계셨는데, 이 분은 서울에서도 같은 작업을 하고 싶다는 의지가 있었어요. 그런데 마침 ‘한양도성박물관’에서도 낙산 근처에 있는 마을들을 일러스트 방식으로 기록해보고 싶다는 의사가 있어서, 이 작가를 매칭시켜 주었죠. 예술인의 기획안과 기업의 니즈가 바로 일치가 돼서 쉽게 풀린 케이스죠.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아요.

 

Q.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예술가의 기획과 기업/기관의 니즈를 어떤 식으로 조율해 나갔는지 궁금합니다.

 

주성진 : 먼저 좋은 사례를 말씀드릴게요. ‘아모레퍼시픽’은 신상원 멘토님의 소개로 파트너가 된 기업인데요, 이전부터 ‘아모레퍼시픽’은 예술에 대해서 열려있는 입장을 가진 곳이었어요. 신상원 멘토님께서 조직문화와 관련된 작업을 ‘아모레퍼시픽’과 오랫동안 해왔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런지 이번 사업과 기업에 파견된 예술인들에게 굉장히 호의적이었어요. 기업 입장에서는 최대한 리스크를 줄이고 싶은 것이 당연하잖아요. 그 부분에 대해선 이미 신뢰를 얻고 시작한 케이스죠. 보통 예술인들이 기업같은 큰 조직에 가게 되면 심리적으로 위축이 돼요. 생소하게 느껴지니까요. 그런데 ‘아모레퍼시픽’에서 먼저 작업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 물어보고, 바로 작업 공간을 확보해주었어요. 식사와 출입에 불편함에 없도록 회사 아이디카드도 발급해주고요. 이렇게 호의적으로 지원을 해주니까 파견된 예술인분들이 아예 거기서 출퇴근을 하면서 작업을 하게 됐죠. 그러면서 성과도 많이 내고요. 회사 직원들도 지나다니면서 예술인들이 작업하는 것을 직접 보게 되니까 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요.

 

신상원 : 기업이 예술인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의지가 얼마나 있는지가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무조건 예술인들에게 요청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담당자와 멘토가 기획을 같이 했어요. 기획을 하면서 기업의 입장과 예술인의 입장을 잘 조율하면서 소통을 했죠. 아모레퍼시픽에서 활동하는 팀 중 하나의 에를 들 수 있겠네요. 판화가, 애니메이터, 뮤지션, 이렇게 3인의 협업 팀인데요, 판화 기법 애니메이션으로 조직문화 변화를 위한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마침 기업 측에서는 화장실 이용 문화를 바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요. 여기서 접점이 만들어진 거죠. 함께 머리를 맞대고 기획을 한 끝에 환경미화원 아주머니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업을 하게 되었죠. 아주머니들의 캐릭터도 만들고, ‘변기가 생명체로 꽃을 피우는 등’ 메시지를 담은 그림도 함께 그리는 오픈 스튜디오를 만들어서 임직원들이 참여하게 했어요. 예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죠. 재료가 ‘완판’될 정도로 성황이었어요. 이렇게 기업과 예술인의 생각이 접점을 찾은 거예요. 기업은 계속 예술인의 작업에 지원을 해주었고 예술인들도 자신들의 의견만을 고집하지 않으면서도 애니메이션 창작이라는 방식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죠.

 

류성효 : ‘아모레퍼시픽’ 사례에서 좋은 힌트가 많이 나온 것 같아요. 예술인들 스스로 자신들의 콘텐츠가 예술 시장을 넘어서도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증명해야 돼요. 그 러기 위해선 예술 콘텐츠가 사회전반에 침투해서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 유형들을 많이 개발해야 하는 것 같아요. 예술이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형태로 계속 보여주어야 돼요. 그렇게 되면 비록 <예술인파견지원> 사업의 혜택을 받지 못한 예술인라고 할지라도, 어떤 형태로든 기업/지역에 자신의 콘텐츠를 어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주성진 : “‘아모레퍼시픽’이 예술인들이랑 한 거 봐봐. 잘 돌아가잖아. 너네도 나랑 이런 거 할 수 있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게끔 만들고 싶은 거죠.

 

류성효 : 이런 식으로 사회에서 예술이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는지를 계속 인지를 시켜줘야 해요. 예술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가치가 우리끼리 공유되는 것만이 아니라 대중에게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것을 계속 보여줘야죠.  

 

 


 

 


 

- 예술 활동과 직업을 연결시키는 사업, ‘과정’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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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진 : 하지만 ‘아모레퍼시픽’ 같은 케이스는 굉장히 이상적인 케이스에요. 무엇보다 CEO가 예술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죠. 일반적인 기업은 이 정도로 예술인들의 작업에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기가 쉽지 않아요. 보통 대기업에서는 그동안 하지 않았던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을 하려면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은 거죠.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올해는 시험사업의 성격으로 작게 진행을 했어요. 올해 사업의 결과를 보고 효과가 있다고 판단되면 내년에는 좀 더 확장을 시켜보겠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기준점을 ‘아모레퍼시픽’에 두면 안 된다고 봐요. 대부분의 기업은 사업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 보수적으로 진행을 할테니까요.

 

류성효 : 몇 개의 사례를 가지고 일반화 시킬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참여하는 아티스트의 숫자만큼 다양한 유형이 있거든요. 제가 담당하고 있는 사업 중에 상당한 의욕을 가지고 출발을 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약간의 문제가 드러나기도 하고 몇몇 해프닝과 같은 일을 겪으면서 형태와 규모가 바뀌게 된 사례도 있어요. 우선 계량적으로 30명 정도를 참여시키며 시작했지만 꾸준하게 참여한 인원이 많이 줄어 5명 정도가 된 사례가 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주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러한 과정이 충실히 기록되어 공유되는 것 또한 다른 의미에서 바라보아야 할 사업의 또 다른 가치가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러한 경험이 다음번에는 큰 도움이 되겠죠. 

  

주성진 : 말씀하신 그 지점이 <예술인파견지원> 사업이 다른 사업과 차별화 되는 지점인 것 같아요. 만약 다른 기관의 다문화사업이나 소외문화지역사업 같은 사업이었다면, 망한 사업으로 치부됐겠죠. 성과가 다섯 명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다음 해 지원을 못 받게 되겠죠. 하지만 <예술인파견지원> 사업은 예술인들이 사회로 나가는 지도를 그리는 사업이기 때문에 실패도 중요한 가치거든요. 지도 안에 보물이 어디에 묻혀있는 지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 길로 가면 낭떠러지가 있다고 알려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니까요.

 

류성효 : 어떤 사례로 봐야할지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 농장과 매칭된 작가가 있는데요, 어느 날 면담을 진행해보니 작업 외에 농장 일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계시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왜 그러고 있느냐고 물어보니까, 패키지 작업을 하려면 농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실상은 농장 안에서 작가에게 본인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 위해 노력하는 형태로도 이해할 수 있고, 어떤 형태로든 노동에 의한 가치로 기여를 하고 싶으셨던 거겠죠.

 

주성진 : 이 사례를 일반화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기업은 예술인에게 직접 돈을 주는 주체가 아니잖아요. 물론 작업에 필요한 재료비를 기업에서지원해줄 수 있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죠. 기업 입장에서는 공짜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거예요. 거기에 대한 실질적인 책임을 지고 있지도 않고요. 그러다보니 처음에는 부담 없이 일단 해보자고 했다가, 시간이 지나니 이게 반드시 성과를 낼 필요는 없는 사업으로 생각이 드는 거예요. 결국 파견된 예술인은 방치되는 거죠. 하지만 파견된 예술인 입장에서는 행정적으로 정해진 시간을 채워야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돈을 받고 있기도 하니까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허드렛일이라도 하고 있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농장에 파견된 예술인은 기획자 마인드로 먼저 농장 분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한 것일 수도 있어요. 섬 같은데서 마을 만들기 같은 사업을 할 때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설문지 돌리고 이런 것 보다, 할머니들 짐도 들어드리고 삽질도 하면서 마을 분들의 마음을 얻는 게 먼저 인 것 처럼요.

 

류성효 : 그 분도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농장 사람들이 엄청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나 혼자 책상 앞에 앉아있을 순 없다는 거죠. 저는 모든 아티스트가 기획자라고 생각하는 입장이에요. 자기 작업을 조율하고 만드는 과정 자체가 다 기획이잖아요. 그런 것들을 빼놓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주성진 : 이게 좀 고민되는 지점이기도 해요. 예술인 스스로 셀프 매니지먼트가 가능한 기획자 혹은 기업가가 되기를 강요하는 것이 과연 맞느냐는 거죠. 뭐 기획자까지는 괜찮은데, 기업가적인 마인드를 장착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기업가라는 말 안에는 끊임없는 자기개발을 통해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으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잖아요. 예술인복지라는 것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예술인으로 살 수 있는 것이 가능케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죠.

 

류성효 : 저는 그것 역시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성공한 작가 중 상당수가 기업가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요. 장사를 하라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가치를 최대한 어필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전 더 적극적으로 말하고 싶어요. 예술인이라는 것이 모든 상황을 합리화시킬 수는 없다는 거죠. 단지 그림을 그린다고, 음악을 하고 있다고 해서 사회가 그들을 보호할 수는 없잖아요.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주성진 : 그건 예술인이 선택해야 할 문제인 것 같아요. 세상의 모든 예술인들을 기업가로 만들 필요는 없다는 거죠.

 

신상원 : 예술인 스스로 기업가적인 마인드를 가지려고 마음을 먹는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현재 자신을 효과적으로 세일즈할 수 있는 예술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런 사업이 필요한 거겠죠. 아까 이야기가 나왔지만, 예술인이 다짜고짜 기업에 찾아가서 ‘이런 거 한번 해보실래요?’ 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예요. 이 사업의 목표 중 하나는 기업과 예술인들이 협업하는 사례들을 많이 만들어서, 기업들이 마케팅 기획을 하거나 조직문화를 바꾸려고 고민을 할 때 그들이 먼저 예술인을 찾게 만드는 거예요. 기업이 운영하는 미술관이 아닌 사무실 안에서 예술인들이 상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매개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 예술적 역량 강화가 바로 직업역량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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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다시 아까의 사례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진행해볼게요. 지금 현재 <예술인파견지원> 사업에 참가한 기업/지역들이 예술인에게 직접적으로 돈을 주고 있지는 않지만, 기업/지역 입장에선 파견된 예술인과 소통하는 일 역시 하나의 업무로 인식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서 말한 농장과 같은 곳에서는 기존의 업무에 추가되는 그 업무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지 않나 싶은데요.

 

신상원 : 그렇죠. 기업이 그런 것까지 고려했을 때, 예술인과의 협업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투자를 하게끔 만들어야 하는 거죠.

 

류성효 : ‘서울시설관리공단’의 사례가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형을 하는 작가가 파견돼서 업무에서 반복되는 동작에 특화된 의자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업무의 성격마다 필요한 동작이 모두 다른데, 왜 다 똑같은 의자를 사용하고 있느냐는 질문에서 시작된 작업이죠. 예를 들면 톨게이트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주로 반복하는 동작에 특화된 의자를 만들겠다는 거예요. 이 작가의 기획안을 가지고 저희가 ‘서울시설관리공단’에 매칭을 시켜주었죠. 지금은 기획 단계인데요, ‘서울시설관리공단’의 과장님이 직접 작가와 적극적으로 소통을 하고 있어요. ‘서울시설관리공단’ 입장에서도 그런 의자가 만들어지면 무엇보다도 작업 효율이 좋아질 것이고, 부수적으로 직원들의 특수한 여건까지 고민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외부에 보여줄 수 있을 테니까요. 예술인의 협업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어요.

 

주성진 : 추가적으로 그 작업에 대해서 의자전문기업과도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파견된 조형 작가도 의자에 관해선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거든요. 원래는 정형외과 의사나 의자공학자 같은 분을 소개시켜 드리려고 알아보다가, 한 의자회사에서 관심을 보여서 만남을 주선하고 있어요. 의자회사의 홍보와 연계될 수 도 있을 것 같고요.

 

 

Q. 이 사례가 흥미로운 것은 이 작업이 작가의 예술적 역량 강화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는 점이네요.

 

신상원 : 예술인의 활동무대의 확장이 크레이티브한 생각을 자극해줄 수 있는 촉발점이 될 수 있다는 거죠. 활동무대를 넓혀주는 것 자체가 예술인복지라고 생각해요.

 

류성효 : 보통 직업역량강화라고 말하면서 획일적인 매뉴얼을 만들고 있는데요, 예술인에게 직업역량강화란 더욱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형태의 작업을 할 수 있게끔 지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예술인이 사회에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보통 일반적인 직무 체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예술인들이 생각해내면 그것이 가능하게끔 ‘예술인복지재단’이 중간 매개를 해줘서 아이디어를 현실화 시켜주는 것이 이 사업의 정체죠.

 

주성진 : <예술인파견지원> 사업은 기능적으로는 세 가지 역할을 하고 있어요. 첫 번째는 벤쳐캐피탈의 역할입니다. 예술인들의 작업에 필요한 비용을 대주는 것. 두 번째로는 결혼정보회사의 역할, 적절한 상대를 찾아 매칭 시켜주는 거죠. 그리고 마지막 역할이 바로 보증을 서주는 거예요. 아직 예술인을 낯설어 하는 기업에게 예술인복지재단의 보증을 통해 예술인에게 신뢰를 갖을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하는 거죠. 이 역할들이 결과적으로 예술인에게는 창조성을 바탕으로 한 직업역량강화를 시켜주고, 예술인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개선시켜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 예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선 장기적 계획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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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예술인파견지원> 사업의 사례를 중심으로 예술활동과 직업을 어떻게 하면 연결시킬 수 있을 지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는데요, 마지막으로 올해 사업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그리고 개선할 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류성효 : 이 사업의 포맷은 매우 기본적인 형태잖아요. 근데 이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결과가 나오는 거죠. 단순하게 공식화할 수 없는. 그래서 사업주체인 ‘예술인복지재단’의 의지라던가 참여자인 ‘예술인’과 ‘기업/지역’의 의지가 정말 중요해요.

 

신상원 : 처음에는 사업의 방향이 럭비공처럼 막 튈 줄 알았거든요. 근데 나중에 보니까 그 럭비공이 일정 범위 안에서는 벗어나지 않는 거예요. 사업에 참여하는 예술인들과 멘토들이 가지고 있는 소명이 있는 것 같아요.

 

류성효 : 그렇기 때문에 멘토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처음에 멘토 제의를 받았을 땐 그냥 예술인들이 한 번씩 이야기하면 들어주고 상담해주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기업와 예술인을 잇는 매개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하는 거죠.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멘토들이 처음엔 저처럼 생각했을 거예요. 멘토를 제의한 ‘예술인복지재단’도 그 역할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감을 못 잡았던 것 같기도 한데.. (웃음) 어쨌든 사업이 진행되면서 부끄럽지만 이제야 멘토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된 거죠. 그래서 동시에 깨달은 게 또 하나 있는데요, 지금보다 더 많은 멘토의 수가 필요해요. 지금은 한 멘토가 담당해야 하는 예술인들이 너무 많아요. 어떤 멘토는 혼자서 약 30명의 예술인을 담당하고 계시기도 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멘토가 많을수록 예술인과 매개 시킬 수 있는 기업/지역들이 늘어나겠죠.

 

신상원 : 당장 내년 사업을 대비해 고민해야 하는 문제들이 있어요. 올해 사업을 내년과 어떻게 연결시킬지 생각해봐야 해요. 예술인 파견 지원 사업의 원칙 상 올해 지원을 받은 예술인들은 내년에는 참여가 제한됩니다. ‘스스로 일어서야’ 하는 거죠. 제일 좋은 것은 기업/지역이 올해 활동한 예술인과 내년에 직접 계약을 하는 것인데, 기업이나 지역에게 계약을 강요할 순 없는 거니까요. 그렇다고 내년에 새로운 예술인이 올해 매칭되었던 기업/지역에 또 파견이 되면, 기존에 활동했던 예술인들은 참 허무해질 거예요.

 

주성진 : 저희가 기업에 바라는 건 기존의 예술인 중 몇 명 정도는 기업에서 직접계약을 하고 새로운 예술인 몇 분을 추가로 그 기업에 파견하는 거예요. 그러면 올해 사업과 내년 사업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겠죠.

 

신상원 : 좀 더 논의를 해봐야겠지만, 다행히도 몇몇 기업에서 예술인과 직접계약을 하고자 하는 의사를 보이고 있어요. 기업에서도 올해 사업의 지속성을 가지기 위해 투자하고 싶은 거죠. 좋은 결과들이 나오면 그 성과를 바탕으로 저희와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기업을 발굴해야 되겠죠.

 

주성진 : 올해 시행착오를 통해 배운 몇 가지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예술인의 기획만 가지고 시작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예술인을 중심에 두고 그에 맞는 기업을 찾다보니 매칭시킬 수 있는 기업/지역의 숫자가 부족했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기업 스스로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기업에서 영상을 하는 작가를 원한다고 해서 별 고민 없이 영상 하는 작가를 붙여주게 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기게 되요. 영상 분야 안에도 연출, 촬영, 편집 등 다양한 역할들이 있는데, 기업에서는 그냥 영상 예술인 한 명과 협업을 하면 모두 다 해결이 되겠지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결국엔 서로 안 맞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래서 기업이 원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는 거죠.

 

류성효 : 내년 사업이 잘되기 위해서는 사업 진행과정에 대한 투자가 필요해요. 더구나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잖아요. 그만큼 신중해야죠.

 

주성진 : 이런 사업을 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계량화된 통계 자료로 사업을 평가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술인 몇 명이 취직했어?’ 이렇게 다가가기 시작하면 정말 빛을 발할 수가 없는 사업이에요. 크게는 예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인데, 그게 어떻게 1년 안에 바뀌겠어요. 적어도 3~5년은 해봐야 알 수 있는 사업이에요.

 

 

 

  

사회/글 : 현승인(funkali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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