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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대담] 도시와 예술가는 공존할 수 있을까? - 설재우/김규원




[대담] 도시와 예술가는 공존할 수 있을까?

 

서촌, 북촌, 홍대, 가로수길, 경리단길 등 현재 서울 여러 곳에서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이 몰려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쫒겨나는 현상,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중심에는 예술인이 있다. 예전 주목받지 못했던 지역을 소위 힙(hip)한 공간으로 조성한 이들이 바로 예술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을 새로운 문화로 조성한 예술인들 역시 결과적으로 상승하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예술인들 역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책임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이번 인터뷰레터 <들음>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겪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인 서촌을 중심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원인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예술가, 지역주민들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 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일시 ㅣ 

2014. 11. 10. 오후 3시, 서촌

 

함께 해주신 분들 ㅣ 

설재우 (지역문화 콘텐츠 기획자, <서촌방향>저자)
김규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원)

 

 

 사회/글 : 현승인(funkaline@gmail.com)

 



- 지역문화정책 뒤에는 부동산이 있다?

 

설재우 : 저는 서촌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어렸을 때부터 동네를 계속 지켜봐 온 입장에서 현재 서촌이 짧은 시간 동안 급변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죠. 서촌은 원래 사대문 안에서도 섬 같은 곳이었어요. 80년대까지도 시계가 멈춰있는 듯 옛날의 모습 그대로 박제되어있는 공간이었죠. 그렇게 공간으로서 모든 것이 정체되어있었던 이유는 청와대 근처에 위치해서 건축적 규제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비교적 다른 곳에 비해 옛 서울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었던 거죠. 이게 서촌의 매력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조선 시대 때부터 예술가들이 살아온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해요. 그 예술가들이 삶의 주거지로서 자연스럽게 주민들과 어울려 살았었다는 게 이 지역의 특성인 것 같아요. 겸재 정선도 여기에서 태어난 사람이고, 이상 시인도 여기에서 태어나고 자랐죠. 윤동주 시인처럼 잠깐 살았던 분도 있고요. 지역이 가지고 있는 역사가 길다 보니까 예술가 삶의 궤적이 오랫동안 드러나는 케이스가 많은 편이죠.

 

김규원 : 언제부터 서촌이 급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나요? 

 

설재우 : ‘옥인아파트’가 2008년도에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공동화 현상이 일어났어요. 동네가 붕 떠버렸죠. 길에 있는 상가도 비고, 통인시장도 텅텅 비어버렸죠. 그때부터 외부에서 온 예술가들이 조금씩 비어있는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2010년도 3월에 공중파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촬영했고, 그 방송을 시작으로 서촌에 관심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외부 사람들과 자본이 유입되기 시작한 것 같아요. 미디어의 영향이 컸죠. 소위 문화인들의 공간이 여러 미디어를 통해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졌어요. 예술가의 작품이 알려지기보단, 그 사람의 공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역에 대한 관점에 대한 것들이 미디어에 소개되면서 서촌의 이미지가 잡히고 노출되기 시작했어요. 서촌 원주민의 시각이 아니라 외부에서 온 사람의 시각으로요. 패션 잡지에 힙(hip)한 공간으로 소개되고, 예능프로그램에서도 관심을 가졌죠. 부동산이 급속도로 오르기 시작했고, 2012년에 원주민 이탈 현상이 일어났어요. 월세가 거의 200%에서 250% 정도 올랐죠. 1년 사이에 두 배가 오르고, 또 그다음 반년 사이에 또 두 배가 올랐죠. 거기에다가 권리금도 오르고요.

 

김규원 : 젠트리피케이션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바로 임대료 상승이죠. 그래서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촉구하기도 하는데요, 그 전에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있어요. 지자체 입장에서는 생리적으로 땅값 올라가는 것을 싫어할 수가 없다는 거죠. 바로 세금으로 이어지는 문제이기 때문이에요. 세금이 많이 걷혀야 자기네 지역에서 쓸 돈이 생기니까요.

 

설재우 : 맞아요. 그리고 임대료 문제를 이야기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은 건물주와 세입자를 대립시키는 프레임에 빠지면 안 된다는 거예요. 최근 임대료가 많이 오르긴 했지만, 그전까지 서촌의 월세 수준은 약 10년 동안 동결이었어요. 예전에 저는 오히려 사대문 안에 위치하는 이 동네가 서울의 다른 지역이 비해 비교적 낮은 월세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이 불평등하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곳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데, 이 동네는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문제는 단계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임대료가 조금씩 오르는 게 아니라, 일순간에 몇 배로 껑충 뛰어버렸다는 거죠. 건물주, 세입자 모두 그 변화를 대비하고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없었죠. 그렇게 무방비하게 놓인 상황에서 김규원 박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세수가 늘어나길 원하는 지자체가 주도권을 잡고 관광정책을 펼치기 시작한 거죠. 특히 서촌이 위치한 종로구는 관광 인프라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관광정책이 많아요. 

 

김규원 : 관광정책은 물론이고 흔히 도시재생, 마을 만들기 등 좋은 이름으로 하는 정책들 역시 그 뒤엔 부동산이 있어요. 그런데 정작 지역 주민들과 예술가들은 그걸 잘 모르죠. 일단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순순히 따라요. 피아가 구분이 안 되는 거죠. 피아를 구분하고 당당히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해요. 시민사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죠.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비슷한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프랑스의 문화도시인 리옹이나 마레지구 같은 곳에서도 예전에는 빅토르 위고가 살았는지 어쨌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2차 산업이 퇴행하고 도시 발전 동력을 잃고, 지방자치제로 국가의 보조가 줄어들면서 문화산업을 키운 거거든요.

 

설재우 : 지역 문제의 답을 정부에 기대하긴 어려운 것 같아요. 그렇다고 특히 유목민 같은 삶을 살아온 서울 사람들에게 시민사회를 기대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인 것 같고요. 제가 2008년부터 동네를 기록하면서 느낀 것은 주민들이 정말 지역에 관심이 없다는 거에요. 오히려 외부에서 찾아온 예술가들이 지역에 관해 관심이 더 많은 거죠. 그런데 정작 지역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굴러들어온 돌들이 자기네 동네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굉장히 불편해하더라고요. 자신들이 사는 동네가 왜 중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외부 사람들이 인터뷰 등 외부매체를 통해 ‘서촌이 너무 좋아요. 서촌이 예술적으로 영감을 주는 곳이에요.’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이 불편한 거죠. 저는 예술가들이 자초하는 부분들이 있었다고 생각을 해요. 예술가로 대표되는 창조계급들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우월의식이 자신들 모르게 표출이 된 부분들이 있어요.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이런 것들이 원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주인의식을 감정적으로 건드린 거죠. 예를 들어 예술가들이 마을 벽화 작업을 하게 되면, 무슨 지역문화재단에서 지원해서 어떤 예술가들이 좋은 일을 했다고 보도가 돼요. 주민들 입장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누가 그렸는지도 모를 벽화가 생겼는데, 자신들이 지역의 주인공이 아니라 수혜자처럼 비치니 감정적으로 기분이 상하는 거죠. 저 역시도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지역이라는 것을 너무 편안하게 생각하고 함부로 대하는 느낌을 받아요. 

 

 

 

좌로부터 설재우, 김규원   ⓒ별일사무소

 

 

 

- 대박심리에 빠진 사람들

김규원 : 서촌 원주민의 주도로 진행된 지역 사업은 없었나요? 외부 예술가들의 유입되고 서촌이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지역 원주민들도 움직임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설재우 : 있죠. 원주민들도 분명히 지역을 살리고 가꾸려는 마음이 분명히 존재해요. 원래 ‘서촌 가꾸기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지역 어르신들이 있었는데요, 2010년부터 ‘세종마을 가꾸기회’로 이름을 바꿨어요. 그러면서 이 동네를 ‘서촌’ 대신 ‘세종마을’이라고 부르게끔 유도를 많이 하셨죠. 저는 원주민들이 서촌을 세종마을이라고 부르는 것이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고 봐요. 세종마을의 ‘세종’은 캐릭터에요. 마을 이름에 캐릭터를 쓴다는 것은 이 지역을 ‘치즈마을’같이 관광 지역으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반영되어 있는 거죠. 실제로 ‘세종마을 가꾸기회’로 이름을 바꾸면서 사단법인을 조직하고 종로구청에서 지원을 받아 활동하고 계세요. 그리고 ‘서촌’이라는 이름을 쓰는 외부 사람들을 규탄하기 시작했죠. 외부 사람들이 ‘서촌’을 자꾸 언급하면서 자신들의 주인의식을 뺏겼다고 생각하거든요.

 

김규원 : 제가 보기엔 서울 토박이 특유의 자존심도 어느 정도 작용을 하지 않았나 싶네요. 자신들이 사는 동네에 큰 관심은 없었을지는 몰라도 자존심은 대단했을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외부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 역시 더 강했겠죠. 그리고 서촌, 북촌, 남촌이라는 지명은 경복궁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거잖아요. 서촌을 ‘세종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바꾸면서 동네에 대한 주체성을 찾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럼 ‘세종마을 가꾸기회’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설재우 : 지역 관광지도를 만들어서 배포한다든지, 세종대왕 어가행렬 재현 등 철저하게 지역 관광화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어요. 개인적으로 참 아쉬운 점은 존재감을 표출하기 위해서 그러시는지, 너무 외형적인 이미지에만 천착하고 있다는 거예요. 아까 건물주와 세입자를 대립시키는 프레임에 빠지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고 말은 했지만, 지역 주민 중 대박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죠. 얼마 전 미래유산에 관한 심포지움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이화동에 사시는 주민께서 오셔서 ‘그래서 우리가 당장 이익을 보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느냐’고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경제적으로 당장 이익을 볼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한 지역이 문화적으로 발전하는 데는 왕도가 없어요. 지역 문화라는 것은 이벤트와는 다른 거죠. 장기적인 관점으로 가야 하는 것인데, 당장 경제적 이익만을 쫓고 있는 거죠. 그 대박 심리를 바꾸지 않으면 지역 문제는 심화할 수밖에 없어요.

 

김규원 : 우리가 생각하는 지역 문제와 그 지역의 원주민들이 생각하는 지역 문제와는 온도 차가 있을 수 있다고 봐요. 서촌과는 그 맥락이 다르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을 이야기할 때 요새 자주 언급되는 이태원 경리단길의 경우, 원주민들의 개발 욕구가 처음부터 강했어요. 이태원 원주민들에게 양공주, 해방촌은 지우고 싶은 기억이거든요. 아무리 자신이 사는 동네를 사랑하라고 말을 해도 그분들 귀에는 전혀 들리지가 않는 거죠.  

 


- ‘예술가’이기보다 한 지역 공동체의 ‘구성원’이라고 생각을 해야

 

김규원 : 다시 예술가와 젠트리피케이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저는 예술가들이 어느 지역에서 예술 활동을 하거나 공간을 만들 때, 예술가로서 자기 욕심을 가지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돼요. 그런데 그 욕심이라는 것이 너무 강하게 표출이 되다 보니, 처음에 이야기가 나온 것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까 서촌에는 예술가들의 삶의 궤적이 오랫동안 드러나는 케이스가 많다고 하셨는데, 예전에 서촌에 살았던 예술가들은 주민들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나요?

 

설재우 : 주민의 관점에서 봤을 땐 존재감이 없었죠. 주민들은 자기 집 주변에 어떤 예술가들이 살고 있는지에 대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서촌에 박노수 화백의 가옥이 있는데, 그 가옥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리는 공간은 아니었죠. 근처에 있는 청전 이상범 화백의 가옥은 이른 시기에 문화재로 지정된 곳인데도 불구하고, 주민 중에 동네에 그런 집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요. 그 외에도 천경자 화백, 노천명 시인, 홍난파 작곡가, 변형로 시인, 염상섭 작가 등 여러 예술가의 흔적들이 남아있지만, 사실 지역에서는 이런 것들을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진 않았어요. 서촌에서 예술가들의 삶은 예술가이기 전에 지역 주민의 삶이었던 거죠. 그에 반해 지금 서촌의 예술가들의 삶은 주민과 동떨어진 삶이에요. 이전 서촌에 살았던 예술가와 지금 서촌 예술가의 정체성은 다른 느낌이에요. 제가 생각하기엔 예술가 스스로 정체성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지역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이 지역에 애착을 가지는 주민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아니면 젠체하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느냐는 큰 차이가 있죠.

 

김규원 : 말씀하신 것처럼 예술가가 지역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에 둘 것인지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을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로 규정하고 있지만, 실은 그들에게도 책임은 있다는 거죠. 지금의 부동산 업자들은 예술가들을 부동산 시장의 시험대로 이용하고 있어요. 그 동네가 뜰지 안 뜰지 예술가들의 움직임을 보고 가늠을 해보는 거죠. 예술가들이 그 동네에서 잘 견디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자연스럽게 부동산 가게들이 들어가요. 그리고 주변에 여러 업종이 생기기 시작하죠. 그리고 그 동네가 소위 핫한 동네로 알려지기 시작되면 당연히 임대료가 오르게 되고요. 근데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몰라요.

설재우 : 맞아요. 그들이 이 지역이 마음에 든다고 예술적으로 무엇을 만들고 꾸민다고 하다고 하지만,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그 사람들이 자신의 동네를 이렇게 만든 원흉일 수 있는 거예요. 그렇다고 예술가들이 들어오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책임감을 가지고 이 지역의 유산을 잘 가꿀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거죠.

 

김규원 : 그 사람들은 그냥 이 지역에서 사는 것이 너무 즐겁기만 한 거예요. 장소에 대한 책임을 모른 체 즐거워하기만 하면 안 돼요. 제주도를 보세요. 지금 제주도는 예술가들이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갈등 혹은 도전의 도가니가 되었어요. 장소와 공간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면, 이주 예술가가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설재우 : 예술가들이 도시와 공존을 하기 위해선, 지역을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곳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이곳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내가 잠시 머무르고 가는 휴게소, 정거장 같은 곳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그 사람은 끝없는 피해자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지역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해선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설재우 : 결국은 젠트리피케이션 역시 경제논리에 의해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잖아요. 경제논리에 지역을 뺏기지 않으려면 지역주민과 예술인이 연대해서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요. 지역주민들은 대박에 연연하지 않고 지역을 문화적으로 발전시킬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제대로 살펴야 하고요, 예술가들은 이 지역의 문화적 특색, 문화유산을 살리면서 예술가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봐야죠. 저는 예술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지역과 관련해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만드는 예술가, 기획자들의 역할은 더더욱 중요하죠. 기존의 서촌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들은 사실 서촌의 개성을 잘 살리지도 못했고, 특정 계층에만 이익을 주는 프로그램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이런 프로그램들은 장기적인 관점으로 지속 유지하기가 힘들죠.

 

김규원 : 그렇죠. 지금 여러 곳에서 하고 있는 도시재생, 마을공동체 사업과 같은 지역 문화사업의 가장 큰 문제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죠. 지역 주민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런 과정이 생략되고 있어요. 단적인 예로 문화 특구 사업도 외부에 용역 줘서 6개월 만에 보고서 하나 만들고 공청회하고 끝나버리잖아요. 그리고 바로 사업으로 들어가는 거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요. 장기적인 철학을 가지고 전체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각자 단기적 성과만을 쫓다 보니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거죠. 

 

설재우 : 제가 얼마 전에 일본의 ‘가나자와’시와 ‘나가하마’시를 다녀왔는데요, 이 두 곳은 1980년대부터 마을 만들기 사업을 꾸준히 해오면서 이제야 결실을 거두어가는 과정이에요. 그곳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우리는 지역을 경제 관점으로 보지 않는다. 경제가 무너지면 문화는 같이 무너지지만, 문화가 서있 을 때 경제는 무너지지 않는다.”고요. 저는 ‘유산’이라는 말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데, 죽은 후 다음 세대를 위해 남겨놓는 것을 ‘유산’이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그 ‘유산’을 남기기 위해 조바심을 내고 서두르다 보면 오히려 ‘유산‘이 돼버리는 거죠. 문화유산이 되기 위해선 그것을 품고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한데, 지금 대부분의 문화 프로그램들은 지역 문화에 대한 관점이 너무 단기적이라는 거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버리는 격이에요.

 

김규원 : 문화유산이 중요한 것은 역사적인 의미를 차치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시간표이기 때문에 필요해요. 너무 빠른 속도로 나아가다 보면 현재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잊어버리게 되거든요. 거기서부터 방황이 시작되는 거예요. 지금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려주는 것이 바로 문화유산이에요. 그 유산이 좋든 싫든 그것들이 남아있어야지 뒤를 돌아보면서 지금의 위치를 가늠하고 앞으로 나갈 방향을 확인할 수 있죠. 시계가 없어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설재우 : 서촌에는 장애인이 많이 살고 있어요. 이게 지역이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잘 모르는 건데요, 장애인이 많은 이유는 서촌에 ‘서울농학교’와 ‘서울맹학교‘ 라는 특수학교가 두 군데가 있기 때문이에요. 굉장히 역사적으로 오래됐죠. 얼마 전에 100주년이 됐으니까요. 그래서 서촌에 장애아동을 둔 가족들이 많이 살고 있죠. 그런데 아직 지역 공공예술로써 장애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그런 어떤 부분은 전혀 없었어요. 지역의 외적인 모습을 꾸미는 활동들은 많았지만, 실제로 주민의 삶을 변화시키고 개선하기 위한 감동을 주는 움직임은 없었다는 거죠. 저는 예술가들이 대부분 활동가의 기질이 있다고 보고 있어요. 저는 활동가이지만 예술가의 기질이 있고요. 예술가는 창조하는 사람들이고, 기획하는 사람들이고,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들이 한 지역에 속해 있는 구성원으로서 지역과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지역이 소중하다고 말하기는 참 쉬워요. 그리고 그런 말을 들으면 당연하게 느껴지죠. 하지만 실제로 그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봤으면 좋겠어요.

 

김규원 : 예술가들에게는 지금 현실이 힘들더라도 저항하고 버티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도시와 공생하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있는지 잘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도시 정책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책임감을 가지지 않고 할 바에는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낫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 인터뷰이 개인의 의견은 <인터뷰레터 : 들음>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사회/글 : 현승인(funkaline@gmail.com)

  

 

원문링크 : http://blog.naver.com/kawf486/220400130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