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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돌탑을 쌓듯 마을과 함께 만드는 영화 - 영화감독 신지승




돌탑을 쌓듯 마을과 함께 만드는 영화

영화감독 신지승 


인터뷰/글 : 현승인(funkaline@gmail.com) 

 




-마을영화를 만들어나가는 과정 자체가 축제

 

Q.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신지승 : 전국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람들 간의 드라마를 찍고 영화축제를 열어가는  신지승입니다. 

 

Q. 마을 영화라는 것은 어떤 것이죠? 

 

신지승 : 저는 제 영화를 축제로서의 영화라고 말합니다. 함께 으쌰으쌰하면서 어울려 연기하고 영화를 찍고 난 이후 마을 사람들과 마을극장을 열 때까지의 모든 것이 축제로서의 과정인 셈이죠. 그런데 지금까지 언론에서는 이 ‘축제’만을 강조해서 제가 마을 공동체를 위해 축제를 열어주기 위해 일반적인 영화를 찍는 사람으로 다루더라고요. 이건 제가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어요. 

제 영화는 주제, 대상, 작업방식이 모두 저의 영화적 이상을 실현하는 작업입니다. 주제나 메시지라는 작가의 세계관으로부터 나와 누구는 만들기만 하고 누구는 보기만 하는 이분법을 파괴하려는 작업입니다. 가장 작은 마을이라는 공간에서 사람과 자연과 생명을 노래하는 영화적 창작을 시도하는 그런 작업 철학이나 방식을 언론에서는 제대로 다루어 주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Q. 저도 잘 이해가 되진 않는데요. 축제로서의 영화란 표현이 어떤 뜻을 내포하나요?

 

신지승 : 축제로서의 영화라는 개념과 단지 축제를 열어주는 것은 다르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영화는 “작품”과 “상품”으로만 존재했어요. 작품이라고 하면 예술영화가 있겠고, 상품이라고 하면 대중상업영화가 있죠. 세계 영화사의 두 줄기가 “상품”과 “작품”이라면, 제 영화는 산업과 예술을 넘어 “흥과 축제로서의 영화”라는 겁니다. 

 

Q. 그렇다면 감독님께서 생각하시는 ‘축제’란 무엇인가요?

 

신지승 : 영화로 축제를 연다고 하니까, 문화시설이 거의 없는 지역에 가서 체험수준의 영화를 만들고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수준의 나눔 방식은 아니에요. 전 그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어 축제로 즐기는 거예요. 작가와 관객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이지요.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함께 구성해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삶의 성찰과 공동체에 대한 화두를 공유하는 축제가 되는 거죠. 

그렇다고 제가 무슨 마을주의자, 지역주의자는 아니에요. 저는 단지 그동안 상품과 작품이라는 영화예술세계에서 다루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사람과 공간을 둘러싼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것이죠. 마을 내에서도 가장 바닥에 서 있는, 앎과 힘에 억눌려 있는 사람, 뭐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담아서 영화를 통해 기존의 역학관계를 뒤집어야지요. ‘어? 저 인간, 말도 못하는 놈이야. 저 사람은 연기 못할 거야.’ 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과 영화를 찍음으로서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 사람에 대한 재발견을 가능케 한다면 이게 최고일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축제는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실존적 평등을 깨달아가는 과정입니다.

 

Q. 마치 역할놀이를 통한 심리 치료 같습니다. 영화를 찍고 난 후에도 마을 사람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겠네요. 

 

신지승 : 그렇죠.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영화를 접해본 적이 없어서 자꾸 오해하는 것 같아요. 외국에서도 공동체 연극이라는 게 있긴 하지만 그것도 사실은 정치사회적 의제를 상정하는 방식 혹은 적극적인 소수를 중심으로만 이루어지죠. 이런 연극은 어떤 주제나 메시지라는 프레임을 설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기존의 작품행위와 다르지 않습니다. 

전 그것과는 달라요. 애초부터 시나리오를 만들지 않죠. 마을의 이야기를 제대로 담기 위해 사람들의 실제 캐릭터를 그대로 유지해야 하거든요. 마을 사람들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창작자이며 관객입니다. 또한 작가의 메시지나 의도 그런 프레임이 전제가 되지 않고 그들의 삶과 일상이 프레임을 형성합니다. 

 

Q. 마을 밖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가 아닌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영화 내 자극적인 소재나 이슈가 없어도 된다는 거죠?

 

신지승 : 그렇죠. 스토리텔링을 통해 관심과 재미를 주기 위해선 개인과의 갈등, 대립, 부조리, 폭력과 같은 것을 드러낼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표를 팔기 위해선 더 자극적이어야 되죠. 전 그럴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까지의 영화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작품 속에 메시지를 넣으려고 했잖아요. 휴머니즘, 인류애 등등. 그런데 문제는 그 동안 그런 메시지를 담은 예술영화들이 적지 않았음에도 진정으로 변화되어야할 주체들에게 어떤 변화를 유도해왔는가, 지금 무엇이 달라졌는가 묻고 싶기도 했습니다. 

진짜 봐야 할 사람들이 안 보는데 문제가 있지요. 제 영화적 실험은 영화 속에 메시지를 담아서 일방적으로 보여주었던 방식을 뒤집어 영화 밖에서 같이 생활하고 이야기 나누면서 마을이 공동 창작하고, 그 영화를 통해 메시지를 계몽하던 지식인, 예술가들에게 바닥삶들의 생활, 역동성, 창작력, 메시지를 거꾸로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영화 클랩보드 모양을 한 신지승 감독의 자택 ⓒ 양리혜

 

 

 

-돌탑은 공동체 예술의 표본이며 미래

 

Q. 마을을 고집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신지승 : 마을을 고집하지는 않습니다 제 시작은 어린이였기도 했고 고아원, 소년원, 미혼모, 청소년들이기도 했습니다. 전 보편과 추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구체적 개개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도시는 너무 광범위해요. 서울이나 광역지역에서 영화를 찍는다고 하면 대체 누구와 어떻게 찍어 그 지역적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하지만 마을은 소수이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이들에게 개별적 만족을 줄 기회가 많은 겁니다. 가장 미시적 공간에서 구체적인 개개인의 일상적 삶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에요. 

상업대중영화는 불가피하게 탈지역, 탈세대, 불특정한 대중이 되어야만 합니다. 더 강렬한 이슈를 만들어야 합니다. 직업연기자들이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지역의 사투리를 구사해서 영화를 찍었다고 해서 지역 영화가 되겠습니까? 진정한 지역 영화라고하면 그 지역 사람들이 그들의 삶터에서 참여하고, 언어, 전통, 역사, 음식, 산과 강, 문학, 축제들이 한데 빚어지는 지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Q. 부산에서 영화를 찍은 ‘친구’같은 영화를 지역 영화로 부를 수 없다는 말로 들려요.

 

신지승 : 그건 당연한 것이지요. 저에게 마을은 곧 사람입니다. 제 영화에는 그 마을의 사람들이 직접 등장하잖아요. 그렇다고 다큐멘터리는 아닙니다. 이건 드라마예요. 마을 사람들이 직접 마을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만, 실재와 가공 사이에서 연기를 하는 것이거든요. 단지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가공된 프레임을 짜고 시나리오를 미리 짜지 않을 뿐이지, 이건 어디까지나 드라마입니다. 마을 사람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모이고 모여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공동체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거죠. 

 

Q. 사전에 만들어진 이야기가 없다면 어떻게 이야기 구성을 하시는 건지 궁금합니다.

 

신지승 : 바로 마을에 사는 a, b, c, d 라는 사람의 캐릭터를 유지한 채 그들의 관계 속에서 있을 수 있는, 또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들을 뭉치고 뽑아내고 가공합니다. 실제 이야기가 포함될 순 있지만, 실제 사건을 리얼하게 재연하지는 않습니다. 무작위적이고 무질서한 듯 보이는 에피소드들을 한데 모으고 구성해 나가면서 한 마을에 살아가고 있는 “다수의 실재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참여하는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1-2명 주인공을 내세우고 다수를 엑스트라로 만들지 않아요. 모두가 주인공인 동시에 주인공이 아니게 되죠.

갈등과 대립, 서구의 개인주의에서 비롯된 상품이나 예술로서의 이야기 구조와는 다릅니다. 모두가 얽히고 섞이는 다수의 이야기를 그들의 삶이 빚어내는 주제와 더불어 만들어 냅니다. 그 속에서 그들의 생활과 예술의 거리는 좁혀지고 그들은 단순히 배우를 넘어 창작자가 되고 어울림의 축제를 끄집어내려 노력을 합니다. 

그 마을의 “지금 그리고 여기”에 주목하다보니 다른 마을사람들이 보기엔 깊은 공감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Q. 그렇다면, 배우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시는지요? 감독님 영화에도 연기력이라는 게 필요할까요?

 

신지승 : 마을 주민들은 이미 연기를 배우지 않고도 잘 합니다. 우리가 아는 서구적인 연기법은 교육을 통해 소수를 대상으로 훈련되고 가공된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민요나 농요같은 것은 누구나 잘 따라 불렀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함께 잘할 수 있는 것을 통해 우리 모두가 삶의 축제를 벌려야 하고 공동체 중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축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배우가 될 수 있습니다. 못생기고 잘생기고,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를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 제 영화를 돌탑으로 비유합니다. 돌탑은 이전 사람이 돌을 얹어놓으면 그 다음에 지나가는 사람이 그 위에 돌을 또 얹어놓기가 반복되면서 만들어진 구성체잖아요. 바로 이 돌탑이 인류 태초 때부터 있었던 일종의 공동체예술 같은 겁니다. 

사람들은 개개의 돌마다 개인의 고민과 상처, 바램을 얹어서 기도하고 염원하면서 돌탑을 쌓아요. 그리고 그 누구도 그 돌탑을 망가뜨리려고 무거운 돌을 얹어놓지 않습니다. 가장 작고 가벼운 돌이 맨 위에 올려지게 되겠지요. 돌탑은 공동체적 무의식이 바탕이 된, 과정적 예술행위이기도 할 겁니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 예술이 지향해야할 미래이기도 할 것이고요.

부끄럽지만, 올해 '오프앤프리국제확장영화예술제'에서는 마을영화를 특별상영, 조명하는 기획전을 열고 “지금 이 시기 신지승은 가장 중요하다 신지승은 새로운 발견이다. 한국영화가 앞으로 지향해야할 중요한 미덕을 신지승은 제시한다.”고 추켜 올려주셨습니다.

 

Q. 생각해보니 정말 그러네요. 모두가 이 돌탑이 완성되길 원하면서 돌을 올리잖아요.

 

신지승 : 제가 돌탑을 계속 강조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마을 영화도 그렇게 만들어지는 거예요. 사람들은 돌탑을 쌓기 위해 굳이 크고 잘생긴 돌을 찾지는 않아요. 자신의 근처에서 흔히 굴러다니는 작고 못생긴 돌을 얹어놓죠. 그리고 모두가 돌을 얹는 그 순간에는 그 돌이 돌탑의 꼭대기가 됩니다. 제 마을영화 미학의 핵심이죠. 

우리 같은 작은 미미한 존재들이 모여 우주를 만들듯이, 그런 보잘 것 없는 돌들만이 마을돌탑영화에서는 주체들입니다. 작은 마을 내에서도 재주 없고 끼 없는, 마을사람들 속에서도 움츠리고,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의 흥과 가락을 되찾아주고 함께 어울리게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거죠.

 

 

 

ⓒ 신지승

 

 

 

-질보다 양. 전국의 모든 마을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 

 

Q. 공동체 예술을 돌탑에 비유하셨는데, 그렇다면 현재 다른 공공예술들은 어떻게 평가하시는 지요. 최근 공동체의 중요성이 공유되면서 공공예술 또한 주목을 받고 있지만 각자 공공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것 같습니다. 

 

신지승 : 저는 그동안 진정한 공동체예술이 없었다고 생각해요. 정부에서 공공예술을 하고자 했더라도 그것은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어느 누군가를 시혜자로 삼았던 것이었거든요. 몇몇 장인을 동원해서 만들어진 돌탑은 진정한 공동체예술은 아닐 겁니다. 영화로 인해 마을이 유명해져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도 중요하지 않아요. 그 마을, 지역의 사람들이 만나러 올수 있도록 하는 예술이었으면 합니다. 

제 입장에서의 공동체 예술은 구체적인 살아있는 사람을 향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끊임없이 공동체와 개인은 긴장감을 유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은 공동체에 편입되는 존재만은 아니에요. 교집합이 있을 수는 있겠죠. 축제라는 것은 바로 이 교집합의 한 부분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마을에서 몇몇 주민들을 데리고 방송이나 영화를 찍는다고 하면 전문적이진 않아도 대부분 원래 잘하던 사람들이 해요. 말 잘하는 사람과 말 못하는 사람이 갈라져있어요. 그건 다른 누군가에게 아픔과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전국노래자랑의 경우엔 면 단위도 아니고 군단위에요. 군단위에서 가장 재능 있고 적극적인 사람들에게만 벌려진 판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잘하고 못하고 잘나고 못난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도 안됩니다.

 

Q. 외부 상영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신지승 : 마을영화는 마을사람들에게 바쳐지는 제물같은 겁니다. 영화로 남기는 마을 사람들의 기념촬영 같은 것이고요. 즉 기존의 작품처럼 극장,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게 일차적 목적은 아닌 영화인 거지요. 영화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마을 사람들을 만나고 싶게 만드는 영화가 되길 원해요. 그래서 마을로 찾아오면 볼 수 있도록 하고 필요한 이들이 찾아와서 보길 바라는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자본, 스타, 극장, 상품적 이야기로부터 대중들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전 우리 일상의 삶터의 이야기를 명예와 돈을 목적으로 하는 소수의 작가, 투기 자본과 스타, 극장에 의해 빼앗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매표예술화되면서 이야기는 점점 일상을 벗어나고 이슈, 재미, 자극과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겁니다. 때문에 축제로서의 마을돌탑영화를 온전히 인정받고 평가받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생각도 없지 않고요. 

 

Q. 제작비는 어떻게 마련하시나요? 

 

신지승 : 마을이 참여하고 협력해주면 제작비는 별로 안 들어요. 돈 안 들이고 즐길 수 있는 수 있는 예술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돌탑을 돈 줘서 만들어가는 건 아니잖아요. 서로가 십시일반, 쉬는 시간 짬짬이 내서 할 수 있는 예술이 진짜 예술이죠. 물론 그게 젤 힘든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지원금을 3년 전부터 안 받고 있긴 합니다. 지원금을 받다가 못 받으면 작업의 지속성에도 문제가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이제 제가 꿈꾸는 것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민초, 마을 중심의 영화축제를 만들고 싶은데 그게 지원제도와는 거리가 좀 있더군요.

 

Q. 이건 약간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마을 사업을 하려고 마을에 돈이 한번 투입이 되면 지역주민이 좀 변하더라고요. 이전보다 더 삭막해진다고나 할까.......

 

신지승 : 그리고 돈 들고 들어오면 마을 분들의 시선이 좀 다르긴 합니다. 지원금이 없이 마을로 들어갔을 때와는 분명 다르긴 합니다. 진짜 환대를 많이 받았었거든요. 근데 지원금을 가지고 딱 들어가니까 돈 벌러 들어오는 것으로 보는 거예요. 

마을영화는 “양(量)"의 영화거든요. 팔거나 소비하기 위한 퀼리티 즉, 질(質)의 영화가 아니란 말이죠. 천 개의 마을, 4천만의 영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인데, 영화 한편을 마을에서 찍기 위한 지원금은 저에겐 의미가 없어지더군요. 

 

Q. 행정적으로 얽혀있는 부분이 많아서 지금의 지원 시스템은 주로 작품 위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만약에 원하시는 지원형태가 있다면 무엇이 있으세요? 

 

신지승 :  현재 지원제도는 경쟁입니다. 간혹 그 경쟁에 끼고 싶지 않기도 합니다. 전 그냥 사람들의 실존을 드라마 속에 담아놓고 싶고 함께 축제로서의 영화를 즐기는게 목적인데, 경쟁을 하다보면 다른 치장을 해야 되잖아요. 그럼 제 탈자본의 예술철학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되더라고요. 

하지만 일생에 한 번, 생애최초, 최후의 지원제도 같은 건 제안해 보고 싶습니다. 작가가 하기 원하는 프로젝트를 예산, 형식 가리지 않고 단 한번만 지원해주는 그런 제도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 양리혜




-마을 사람들의 순수함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Q. 다시 돌탑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감독님께서 돌탑을 인간 태초부터 있었던 공동체 예술이라 말씀하셨는데요, 하지만 역사에 기억되는 것은 결국 피라미드, 만리장성과 같이 권력으로부터 만들어진 건축물이지 않습니까? 

 

신지승 : 물론 그런 허무도 알고 있죠. 과연 돌탑이 만리장성에 대적할 수 있겠느냐 하는. 하지만 마을영화는 디지털 돌탑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핵심은 미학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피라미드, 만리장성은 정치권력에 의해 타율, 착취 강제적으로 쌓아올린 것에 대한 상징이지요. 사실 제가 찾아가는 사람들은 못 배우고 가난하고 한 번도 권력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돈을 가지고 있으면 절대 표시를 안낼 수가 없어요. 뭘 사든지 뽐내거나 하죠. 지식이 많으면 그 지식을 입으로 말하지 않고는 못 배겨요. 권력이 있으면 그 힘을 꼭 사용해야 되죠. 이걸 못 헤어나요. 이걸 헤어나는 게 해탈이에요. 

그런데 제가 찾아가는 마을 사람들 중에는 이런 것들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그 해탈의 경지가 몸에 배어있는 경우가 있어요. 지식은 없지만 지혜가 있고 직관력이 있는 분들의 즉흥과 우연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스스로의 흥과 멋에 겨워 나오는 삶의 교향곡같은 겁니다. 제가 마을을 찾아가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산, 멋과 맛이 있다는 거예요. 저는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그분들에게서 배우고 깨닫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영화를 통해 문화예술체험과 연결시킨다는 것은 다 헛소리죠. 문화혜택이랍시고 외딴 섬에 들어가 도시인들에게나 맞는 소비적 상품영화를 보여주는 것은 제 입장에서는 범죄와도 같아 보여요. 

 

Q. 마치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코카콜라 병을 던지는 것과 비슷할까요?

 

신지승 : 그렇죠. 마을 문화를 만들겠다고 아무런 계획과 생각 없이 마을에 지원금을 막 뿌리면 필연적으로 사람들은 변하게 되어있어요. 그건 엄청난 문화적 자산을 잃는 겁니다. 그들에게 예술을 보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정신적 예술적 자산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갈등과 대립의 상품 소비적 문화에서부터 스스로 벗어나야하는 거죠. 그래서 지식과 권력과 돈에 오염된 사람들이 그들로부터 계몽되어야하는 거죠. 

아프리카의 5살짜리 꼬마와 미국의 5살짜리 꼬마를 비교 해볼까요? 세련되고 똑똑하고 말 잘하고 계산 잘하는 것이 우위라고 현대문명은 보고 있는 거죠. 하지만 지금 저의 삶에서 더  필요한건 아프리카 꼬마가 가지고 있는 순수, 소박함 그런 겁니다. 그게 제가 추구하는 드라마의 과제 같기도 하고요. 

 

Q. 근본적인 질문으로 드릴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예술이 이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신지승 : 거기에 대해 예술가로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공동체나 마을을 만드는 것은 정치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예술가는 그보다 더 기초적인 사람 간의 환경을 형성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서로 가진 것, 아는 것, 못생겼건 잘생겼건 서열 없이 서로를 이해하고 아름답게 볼 수 있도록 “공기”를 만드는 역할. 어떤 사람은 색으로, 어떤 사람은 향으로, 어떤 사람은 소리로, 어떤 사람은 드라마로 그 공기를 만드는 것이죠. 

 

 

 

 


/ 인터뷰이 소개

 

신지승

약 80여개의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마을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제15회 교보환경대상 생명문화부문 대상과 일맥아트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인터뷰/글 : 현승인(funkali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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